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정치가 아닌 정책을 했다. 부동산 정책,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정책, 소득주도성장 정책, 비정규직 철폐, 주52시간 노동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름만 나열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극과 극을 오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같이 논쟁적 정책들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불통’ 비판을 받았다.
밀어붙인 정책들의 성적표도 좋지 않다. 높은 정권교체 열기가 그 증거다. 특히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사과에 인색한 문 대통령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해 무주택자나 서민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충분히 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도 국민을 분열시켰던 이슈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인 지난달 25일 탈원전 기조의 전환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한 발 더 나아가 건설이 지연되는 원전들의 빠른 정상 가동도 주문했다. 그 이유로 안전성에 대한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를 들었다. 하지만 대선용 방향 전환, 임기 말 면피용이라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독재자들은 법 자체를 무시한다. 그러나 법률은 지키면서도 민심과 다른 선택을 할 때 국민들의 분통 지수는 높아진다. 문재인정부의 인사 문제가 딱 그런 경우다. 신임 장관은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등과 달리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에서는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경우 자진 사퇴 등의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을 택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 대통령은 야당이 반대했던 장관 후보자 18명의 인사를 밀어붙였다. 노무현정부(3명)와 이명박정부(11명), 박근혜정부(6명)에서 임명이 강행됐던 장관의 합계 20명과 맞먹는 수치다. 문 대통령의 불통에 대해 실망감이 컸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선에 진절머리가 났던 국민들은 그러나 ‘선한 얼굴의 불통’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다.
대선이 한창이었던 5년 전 이맘때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독설에 강한 홍 후보가 경쟁자였던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해 “TV토론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났는데, 사람은 참 좋다”고 말했던 것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당 원로 인사가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교했던 얘기도 인상 깊었다. 이 인사는 “의견이 다를 때 노 전 대통령은 면전에서 불같이 화를 내고도, 이후엔 내 의견을 수용한 적이 많았다”면서 “반면 문 대통령은 한없이 착한 얼굴로,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고도 내 주장을 받아들인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들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 인사들이다. 이는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여야는 성남시장·경기지사와 검찰총장을 각각 지낸 아웃사이더들에게 안방을 내줬다. 좁은 땅덩어리에 51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이유다. 5100만명의 다양한 요구를 두 개 정당이 수용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그러나 두 당조차도 민심과 떨어져 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만큼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마음도 절실하다. 측근들보다 야당 의원들을 더 자주 만나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