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지금도 ‘돈’날드 트럼프

입력 2022-03-05 04:04
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사진) 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던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재”라고 말했다. 군사훈련을 핑계로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대규모 병력을 모은 다음 두 달여 동안 ‘외교적 해결’을 주창하다 빈틈을 노려 동우크라이나로 밀고 들어간 푸틴의 전략을 칭송한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발언에 “멍청한 친러시아 성향”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하루 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용감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재임 시절부터 ‘트레이드마크’였다. 이권 챙기기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공화당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강경보수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용해 치밀하게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각종 회사를 차려 놓고 모자부터 배지, 티셔츠까지 팔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이 재임시절 직계가족을 통해 부동산·호텔·관광사업으로 이권을 챙기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로 사업하는 트럼프

사진=AFP연합뉴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거주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이곳에서 큰 행사를 열었다. 1000명 내외의 지지자들을 초청한 파티는 트럼프 본인의 간략한 연설과 저녁 한 끼, 기념사진 찍어주기 등으로 끝났다. 참석자들이 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1만~3만 달러였다. 1박2일~3박4일 동안 리조트에 머물며 식사 등을 제공받는 대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행사 연설에서 “2022년 중간선거는 미 전역에서 ‘트럼피안(트럼프주의자)’ 후보를 공천하는데 여러분의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행사를 통해 2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트럼프 일가는 이 돈을 마러라고 리조트 관리회사 계좌에 집어넣었다. 당초 참석자들은 자신의 돈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통해 공화당 전국위원회로 전달돼 올해 중간선거에 쓰여지는 정치자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돈은 한 푼도 공화당 전국위에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트럼프는 자신이 최대주주인 ‘트루스 소셜’을 애플 아이폰 앱스토어에 출시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반사회적 발언으로 퇴출된 지 1년여 만에 그는 “진짜 미국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었다”며 SNS에 복귀한 것이다.

이 SNS는 지금도 하루 1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할 만큼 미국 백인 강경보수 유권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트루스 소셜이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중심주의의 미디어 중심이 돼 워싱턴 정가를 다시 ‘트럼프 세상’으로 바꿔 놓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이 SNS의 재정구조를 살펴보면 결국 돈을 챙기는 쪽은 트럼프 일가다. 각종 친트럼프 광고를 통한 수익은 공화당 후원금과 전혀 관계가 없는 형태로 운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업 수완은 이밖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 그가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로 벌어들인 돈은 얼추잡아서도 10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NYT는 추산했다. 토크콘서트 티켓은 최소 100달러, VIP패키지는 무려 7500달러였으며, 커피 한잔에만 75달러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 수익도 만만치 않다. 보통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 유수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고 판매에 따른 인세 수입 정도를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내기 위해 큰아들 명의로 자신만의 출판사를 세웠다. 이런 방식으로 자서전을 출판할 경우 그의 수익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신간이 나올 경우 거의 의무적으로 사는 미국 전역의 각종 공공도서관, 열광적인 지지자 그룹과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불티 나게 팔려나갈 게 자명해서다.

신문은 “퇴임 직전 1억 달러짜리 자서전 계약 요청을 받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족 명의 출판사로 책을 펴낼 경우 두 배 이상의 판매고는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일가는 인터넷 온라인 판매를 통해서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마가(MAGA·자신의 대선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줄임말) 스토어’는 지금까지 수십만개의 모자와 스카프 배지 등 각종 기념품을 팔아 치웠다. 온라인 구매에 나선 대다수는 평범한 공화당 지지 시민들로, 이 기념품을 구입하면 정치자금 모금 계좌를 통해 공화당을 후원하는 데 쓰일 것이란 생각에 구매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NYT는 “마가 스토어의 슬로건을 보면 판매 수익이 공화당 후원금으로 쓰이는지, 트럼프 가족회사로 유입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이용해 돈벌이까지 나서는 트럼프 일가의 상술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말 바꾸기’로 못 바꾼 친러 성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유수의 언론들은 일제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논란을 일으켰던 ‘러시아 커넥션’을 다시 들춰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대놓고 반대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이 낱낱이 재조명됐고, 푸틴 대통령과의 친밀한 대화들도 다시 들춰졌다.

아직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의혹은 미국 법무부에 의해 관련자들이 기소돼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미국과 서방은 물론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와중에도 그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략은 천재적이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재빨리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자신의 친러시아 성향을 감추지는 못한 셈이다.

신창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