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로 일군 게임왕국… ‘벤처 신화’ 스러지다

입력 2022-03-02 04:02
연합뉴스

국내 게임 산업의 개척자 중 한 명인 김정주(사진) 넥슨 창업자가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향년 54세.

넥슨 지주회사인 NXC는 1일 메일을 통해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NXC측은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악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라면서 “조용히 고인을 보내드리려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김 창업자는 1968년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김 창업자는 삼성의 지원을 받아 대학원을 다녔지만 그 당시 출세의 상징인 ‘삼성맨’을 택하지 않고 새 도전에 나섰다. 1994년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의기투합해 서울 역삼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지금의 넥슨을 창업했다.

김 창업자는 국내 게임 산업의 최전선에 서 방향을 제시해온 인물이다. 1996년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PC 온라인 게임의 개념을 세웠고, 이후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의 게임을 잇달아 흥행반열에 올리며 회사를 크게 키웠다.

사업가적 기질도 남달랐던 김 창업자는 유망한 게임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의 유명 게임을 슬하에 뒀다. 일찍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중국에서 게임 열풍을 일으켰고, 이후 중국 시장은 넥슨의 ‘캐시카우’가 됐다. ‘한국의 디즈니’를 꿈꾼다고 한 그는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도 투자했다.

김 창업자의 넥슨은 국내 게임사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 클럽을 개척했다. 2020년엔 ‘3조 매출’을 달성하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함께 국내 3대 게임사 ‘3N’으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넥슨은 매출, 영업이익 등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 창업자는 2006년 넥슨 지주회사인 NXC 대표로 자리를 옮기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7월엔 NXC 대표직도 사임하고 이사 직분만 유지했다.

풍파도 있었다. 2016년엔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주식을 무상으로 준 혐의(뇌물 공여)로 재판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으나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2018년 5월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2019년 초에는 도이치뱅크,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NXC의 지분을 매각하려 했으나 수개월 후 철회하기도 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유정현씨와 두 딸이 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