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로 돈을 버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서방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해요.”
러닝 머신 엔지니어인 러시아인 이반 페트로프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타 국가에서 취업을 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2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서방의 초고강도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반 국민들의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곳곳의 현금자동인출기(ATM)에는 현금을 찾으려는 인파가 대거 몰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람들이 ATM 앞에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불과 몇 분 안에 기계 안의 돈이 비워졌으며, 심지어 사람들이 현금 트럭을 추적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인 안톤 자하로프는 “우리는 1998년에 이런 대재앙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은행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후반 러시아는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루블화를 가진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달러를 확보하려고 고군분투했다. ATM 앞에서 줄을 서던 프로그래머 블라디미르는 블룸버그통신에 “1시간 동안 줄을 서고 있다”며 “외화는 없고 루블화뿐”이라고 토로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 후 불과 이틀 사이에 나타난 풍경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 조치로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킨 데 이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보유액을 동결키로 했다.
러시아 대중교통부는 이날 제재 대상이 된 국영 VTB 은행 문제로 버스, 지하철, 트램(노면 전차) 요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이미 애플페이와 구글페이 등 러시아에서 대중적인 지급결제 시스템도 중단되면서 러시아인들은 직접 플라스틱 신용·체크카드를 소지해야 했다.
일부 식료품점에선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모스크바 소재 컨설팅업체 대표인 크리스 위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제한과 통화 가치 폭락으로 물건값 상승이 예상돼 일부 식료품점에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제재는 결론적으로 일반 러시아인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의 경제적 제재가 이어지자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빠르게 철수하고 있다. 마스터카드는 여러 러시아 금융기관들과의 결제망을 차단했다. 셸과 BP, 노르웨이 에퀴노르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나오겠다고 밝혔다. 볼보와 GM은 러시아로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월트디즈니와 소니 픽처스는 러시아 극장에서 신작 영화 개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현재까지 발표된 제재로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약 1∼2% 포인트(200억∼350억 달러)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은 러시아 암호자산 압수 권한을 담은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서방은 연일 추가적인 제재 조치를 준비 중이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