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본체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 2:12). 천사 가브리엘은 이를 가리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말합니다(눅 2:10).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이때 이 좋은 소식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선물을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샬롬(평화)’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평화로다”하며, 천군천사가 찬송했던 것입니다(눅 2:14). 그런데, 샬롬을 선물로 들고 오셨다 했는데, 과연 이 땅에는 샬롬이 있습니까? 지금 날아다니고 있는 저 포탄과 들려오는 총소리는 무엇이며, 절규하는 이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 샬롬은 언제, 어떻게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매우 역동적인 힘의 논리가 거기에 존재합니다. ‘샬롬’이란 ‘몸 값(Ransom)’을 뜻합니다. 적군에게 끌려간 포로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지불하는 ‘보상금’을 말합니다. 아무나 이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가장 세신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이 샬롬을 다 지불하셨는데, 이제는 인간 스스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샬롬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한 연약한 인간은 다시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 권력의 포로, 돈의 포로, 성공의 포로, 욕망의 포로, 건강의 포로, 관계의 포로로 끌려가 다시 묶여버립니다. 여기로부터 탈출해 보려고 인류는 많은 몸값을 지불합니다. 그중 하나가 제사 때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래서 각종 제사를 통해 그토록 많은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려야 했습니다. 또 다른 몸값 하나는 ‘율법 지키기’ 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죄 때문에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 결심하십니다. 직접 오시기로 말입니다. 직접 오셔서, 죄의 포로가 된 백성들을 해방시킬 것을 정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독생자(요 3:16)께서 샬롬을 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단번에 모든 샬롬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군천사들이 “땅에서는 평화로다”라고 그토록 찬송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샬롬을 지불하시는 방식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오신 방식입니다. 가장 힘이 세신 분께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분께서 가장 초라한 곳에 누워계십니다. 이게 바로 샬롬의 본질이며, 샬롬의 원리인 것입니다. ‘묶여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진짜 센 자는, 묶여주려고 낮은 곳까지 내려와서 눈높이를 맞춰가며 무릎을 꿇어 주기까지 합니다. 이걸 가리켜 충성(헤세드)이라 합니다.
샬롬을 들고 내려오셔서 세상과 화해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가 이 샬롬을 들고 더 낮은 세상으로 내려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샬롬을 노래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보증을 서시며 우리의 삶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적으로 더 강해지도록 중보하십니다. 그래서 더 낮게 내려가 누군가에게 묶여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려가 샬롬이 되어 줄 때, 그 사람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동시에 또 다른 힘 센 누군가도 나에게 내려와 샬롬이 되어 줄 것입니다.
홍승수 목사(인천 부성교회)
◇1974년 설립된 부성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시작하는 삼산동 성전 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