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사하게 그윽하게… ‘톡’ 터지는 꽃 향기

입력 2022-03-02 21:18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 내 반듯한 흙돌담 위로 고개를 내민 홍매화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겨울 끝자락을 시샘하는 늦추위가 풀리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당분간 온화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도 나왔다. 바다를 건너 육지에 발을 내디딘 봄이 꽃소식을 전하며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아직도 겨울이 차지하고 있을 것만 같던 대구에도 꽃망울이 앞다퉈 터지고 있다.

대구 꽃소식의 중심지는 달성군 화원읍(花園邑)이다. 말 그대로 꽃동산이다. 그 가운데 비슬산 북사면에 형성된 ‘근본이 되는 마을’ 본리리다. 인흥동(仁興洞) 마비정(馬飛亭) 등의 마을이 있다. 인흥마을은 동네 입구 왼편에 있는 산의 형세가 인(仁)자 형이고, 오른편은 흥(興)자 형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옛날 화원면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직선으로 곧은 흙돌담이 아름다운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가 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으로 지은 70여채의 살림집, 고서를 보유한 문고(文庫)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한 집이 여러 채의 건물로 돼 있어 가구 수는 9개에 불과하다. 문익점 선생의 18대손인 문경호가 1861년에 처음 터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입구에 문익점 선생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고려 말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들여와 보급한 인물이다. 동상 뒤로 목화밭이 펼쳐진다. 목화밭 오른쪽은 매화밭이다. 수령 20~30년 남짓 된 매화나무 군락이다. 온통 붉은 홍매(紅梅), 꽃받침이 붉고 꽃잎이 하얀 백매(白梅), 꽃받침이 푸르고 꽃잎이 하얀 청매(靑梅) 등 매화의 종류가 8가지나 된다고 한다. 마을 곳곳의 매화들은 문태갑 선생이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매화나무는 1000그루가 넘는단다. 이 마을에 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의 백매화는 ‘인흥매’라 불린다.

마을로 들어서면 가로세로 몇 줄씩 뻗어 있는 반듯한 흙돌담 길의 모양새가 정연하다. 담장은 낮아야 2m 안팎, 높으면 3m 정도에 이른다.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내밀한 살림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더없이 말끔한 골목길이다.

그 길의 한쪽에 홍매 한그루가 담장 위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파란 하늘을 향해 붉은 손을 뻗었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가 최근 추위에 얼어붙었지만 조만간 따뜻한 봄 햇살에 활짝 터뜨릴 모양새다.

인흥마을에서 비슬산 기슭 쪽으로 2㎞만 올라가면 마비정마을에 닿는다. 마을 입구 주차장 옆에 흰색 말과 검은색 말 조형이 늠름하다. ‘천리마’인 수말 비무와 암말 백희를 형상화한 것이다. 비무가 천리마란 소문이 널리 퍼져 전쟁에 군마로 뽑힐 처지가 되자 백희가 비무 대신 죽었다는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인흥마을에서 천수봉 반대편에 대구수목원이 있다. 대구 달서구 대곡동의 생활쓰레기 매립장 위에 조성된 도시형 수목원이자 친환경적 생태공간이다. 수목원에 봄의 전령사인 ‘납매’ ‘복수초’ ‘풍년화’ 등이 향연을 펼치고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납매’는 섣달을 뜻하는 납(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자가 합쳐져서 섣달(음력 12월)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 있다. 토종 매화와 달리 꽃 모양이 달맞이꽃을 닮았다.

달맞이꽃을 닮은 '섣달 매화' 납매.

복수초(福壽草)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노란색 꽃을 피운다. 한자로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 꽃 위에서 벌이 꿀을 따느라 분주하다. 복수초와 벌이 봄의 왈츠를 추는 것 같다.

노란 복수초와 꿀 따는 벌이 펼치는 '봄의 왈츠'.

풍년화는 조록나무과에 속하며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품종에 따라 꽃의 색이 다양하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언뜻 노란 성게 같기도 하고 산수유꽃을 닮기도 했다. 앙증맞은 꽃을 가지에 풍성하게 피우거나 이른 봄에 일찍 꽃을 피우면 그 해는 풍년이 된다고 한다. 수목원 내에 2018년 조성된 매화원에는 전국 유명한 매화나무의 2세목 20여 그루가 자란다. 도산매 고불매 인흥매 등 다양한 후세목을 감상할 수 있다.

일찍 꽃 피우면 풍년이 된다는 풍년화.

인흥매의 자손목은 대구 중구 문우관(文友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1914년 설립된 문우관은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학당이다. 100년이 넘는 현재까지 강학이 진행되고 있다. 어른 키보다 낮은 기와 담장 너머 문우관 앞마당에선 인흥매 외에 홍매와 청매도 매화향을 뿜어내고 있다.

인흥매·홍매·청매 향기 어우러진 문우관.

여행메모
숙박시설 갖춘 화원자연휴양림
문우관 주변 남산동 인쇄골목

남산동 인쇄전시관 앞 활자 조형물.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은 중부내륙고속도로 화원옥포나들목에서 가깝다. 인흥마을 앞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조성돼 있다. 입장은 무료다. 인근에 2010년 개장한 화원자연휴양림이 있다. 콘도형 휴양관과 펜션형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대구수목원도 주차료·입장료가 없다. 반려견, 자전거 등을 동반할 수 없다. 음식물 반입도 금지돼 있다. 납매는 외국식물원 인근에서, 복수초는 선인장 온실 옆과 향토식물원에서 만날 수 있다. 향토식물원에선 노루귀와 풍년화를 찾아볼 수 있다.

문우관 주변은 대구 '골목투어' 제5코스인 '남산 100년 향수길'에 포함된 인쇄골목이다. 남산동 인쇄골목은 서울의 충무로와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



대구=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