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은 벨라루스 국경지대에서 열린 러시아·우크라이나 1차 협상이 끝나자마자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포격하며 공세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이로 인해 도심에선 한꺼번에 46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등 ‘집단 학살’을 방불케 하는 전황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서방 언론들은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 주택가에 러시아군이 포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4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고르 테레호프 하르키우 시장은 언론과의 접촉에서 “포격 하루 만에 적어도 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크게 다쳤다”면서 “방공호에서 식수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4명이 숨졌고,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 등 일가족은 산 채로 자동차 안에서 불탔다”고 밝혔다. 이어 “정말 끔찍하다. 하르키우시 역사상 최악의 파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격을 당한 아파트의 밖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건물 곳곳에서 화염이 목격됐다. 시내 중심가에선 로켓 공격을 받은 한 여성이 한쪽 다리를 잃는 모습도 영상에 잡혔다.
올레크 시네구보프 하르키우 지방행정국장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도시 거리에서 수십구의 시신을 볼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러시아군은 도시기반 시설과 무장시설이 없는 민간인 거주지역에 포격을 가했다”면서 “1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추정했다.
또 “지금 하르키우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쟁 범죄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한 집단학살”이라며 “우크라이나인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썼다.
전날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에 거주하는 6세 소녀가 러시아군 포격에 사망한 모습이 외신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CNN에 보도된 이곳 병원에는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진 어린 딸과 피로 범벅된 얼굴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흐느끼는 아버지,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모습이 담겼다.
이 소녀는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인근으로 날아든 러시아 포탄에 희생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료진은 병원 광경을 담고 있던 외신기자에게 “이 시신을 푸틴에게 보여주시오. 이 아이의 눈빛 그리고 우리 의사들 (모습) 말이오”라고 말했다.
서방언론들은 “핑크색 유니콘이 그려진 옷을 입은 소녀가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얼굴을 모래 사장에 묻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를 떠오르게 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거주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격에 피습된 곳은 유치원과 각급 학교도 포함돼 많은 어린이가 희생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세르지 키슬리츠야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지난 27일까지 어린이 16명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인 352명이 사망했으며 204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