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선점하라”… 암호화폐·NFT로 영역 확대

입력 2022-03-02 04:04 수정 2022-03-02 04:04
게티이미지

국내 증권사들이 미래 수익을 찾아 가상자산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제도권 편입 가능성이 높아진 코인·NFT(대체불가토큰) 등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당장 가상자산에 투자하진 않더라도 리서치센터를 보강해 연구·조사 역량을 갖추려는 곳도 늘었다. 증권업계에서 가상자산이 주식, 채권, 부동산과 견줄 자산의 하나로 점차 인정받는 분위기다. 디지털 금융 혁신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가상자산에 발 들이는 증권사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가상자산 사업을 전담할 새로운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신설되는 조직은 이른바 ‘코인 은행’으로 일컬어지는 가상자산 수탁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상자산 수탁사업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NFT 등을 안전하게 맡아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미래에셋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그리는 혁신추진단 산하 태스크포스(TF)가 사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금융시장을 선도해온 미래에셋증권이 가상자산을 차기 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암호화폐,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 등 디지털 기술과 자산의 등장은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며 “제도, 환경, 기술 등의 변화와 경쟁사 동향을 빠르게 파악해 신규 비즈니스를 발굴해달라”고 주문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내용이다. 직접적인 상품을 당장 내놓기보다 관련 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설립 시점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 ‘블록체인 STO(증권형 토큰) 개발 및 운영’ 직무에 해외 석·박사급 인력을 뽑는다는 공고를 올렸다. 증권형 토큰이란 주식, 채권 같은 실물자산을 블록체인 기반 분산장부에 기록한 가상자산이다. 실제 선발까지 이어지지 못했지만 가상자산 진출을 위한 정지 작업으로 해석된다. 컨설팅 기업 등으로부터 STO 및 가상자산 관련 개념, 규정 등 자료를 수집해 내부적으로 검토를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가상자산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주요 자산 중의 하나로 스터디를 시작했다”며 “구체적인 사업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리포트를 발간하는 증권사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미래에셋증권과 유진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SK증권, 교보증권 등이 관련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유진투자증권에서 암호화폐, NFT, 블록체인 등을 담당하던 김열매 수석연구원을 영입하며 리서치센터를 보강했다.

증권사와 가상자산업계와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2월 코인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지분 6.14%(206만9450주)를 인수했다. 두나무는 업비트 외에도 NFT,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며 블록체인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암호화폐 공시 플랫폼 ‘쟁글’의 크로스앵글에도 4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향후 가상자산·디지털 사업 관련 가능성을 열어두고 (투자·인수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증권도 가상자산 제도화를 대비해 신규 비즈니스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초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최종 무산됐다.

조만간 가상자산 관련 펀드도 증시에 등장할 전망이다. KB자산운용은 지난 21일 ‘디지털자산운용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펀드 상품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현·선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가상자산을 테마로 한 주식형 펀드 등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제도화 빨라지는데 상품 개발은 아직

증권사들이 가상자산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증권시장을 관리·지원하는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도 대응에 나섰다. 예결원은 올해 주요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블록체인 기반 STO가 제도권에 편입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독일의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연구하고, STO 발행·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예결원은 한국법제연구원에 의뢰해 오는 6월까지 가상자산의 제도적 수용 방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마칠 예정이다.

이명호 예결원 사장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가상자산 입법과 관련해 깊이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전자등록기관으로서) 자본시장과 관련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거래소도 미국의 비트코인 선물 ETF 상장과 가상자산 거래 규제체계 등을 모니터링하며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정부와 국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법제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며 “향후 구체화되면 거래소가 새로 접근할 부분이 없는지 충분히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나 상품개발, 사업은 당분간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에 대한 금융당국이나 국회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해서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정도만 마련된 상태다. 가상자산업권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별다른 진전은 아직까지 없다.

증권사 관계자는 “가상자산 규제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업을 계획하기 어렵다”며 “금융당국의 공식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증권사로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으로 새로운 수요 창출

주요 증권사들은 핀테크 금융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도 사활을 걸었다.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주식 소수점 거래와 온라인 금융상품권 등 혁신을 선도해온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마이데이터 사업에 집중한다.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초 출시한 마이데이터 플랫폼 ‘모이다’는 일상 속 소비와 투자를 접목하는 데 초점을 뒀다. 모이다는 단순 자산조회 기능을 넘어서 고객에게 소비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종목을 추천하고,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투자증권은 디지털 혁신으로 개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조직개편까지 단행했다. ‘디지털 플랫폼 본부’를 개인 고객 그룹 산하로 재편하고, 해외주식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개발 담당을 신설했다. 금융과 생활을 밀접하게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혁신 서비스로 지정한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도 올해 출시할 예정이다.

금융투자 플랫폼을 지향하는 KB증권도 마이데이터 서비스 ‘마블링’과 간편 MTS ‘M-able 미니’를 출시·운영 중이다. 마블링으로 자산을 통합조회하면 투자·자산 현황을 점수로 알려주는 ‘포트폴리오 진단’, 보유 종목의 투자매력도를 분석하는 ‘주식 종목 진단’ 등 서비스가 제공된다.

삼성증권은 ‘해외주식 주간거래’로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 투자수요를 직접 창출하고 있다. 해외주식 주간거래는 오전 10시~오후 5시30분 사이 미국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서비스다. 프리마켓과 본장, 애프터마켓까지 합치면 삼성증권 이용자들은 하루에 20시간 30분 미국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됐다. 현지 시장과의 시차로 늦은 밤 주식을 매매해야 했던 서학개미의 불편함을 공략한 것이다. 해당 서비스는 13영업일 만에 누적 거래 규모 2000억원을 넘어섰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