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이 임박하면서 선거 벽보 훼손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벽보를 찢거나 구기고 낙서하는 이유들은 다양하지만 유권자의 알권리와 선거 공정성을 해쳐 죄질이 나쁘다는 법원의 판단은 공통적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과가 없는 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 선거 벽보를 훼손할 경우 법원에서는 대개 30만원가량의 벌금형을 선고해 왔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강원도 춘천시의 한 공원 방음벽에 부착된 한 후보의 선거 벽보를 열쇠로 찢은 이는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는 이유를 댔다. 재판부는 죄질을 가볍지 않게 보면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춘천시의 또 다른 장소에서 5차례에 걸쳐 기호 1번 후보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훼손한 이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부산 연제구에서는 대선 후보자 벽보 7장을 손으로 뜯고 발로 짓밟은 이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정치인들이 늘 싸우는 모습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 법원은 뜯겨 나간 벽보의 숫자 등을 고려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바람에 날린 벽보가 얼굴을 때렸다며 잡아뗀 이가 기소된 사례도 있다. 그는 “종이를 뜯긴 했지만 선거 벽보로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맨 좌측 선거 안내 부분부터 박근혜·문재인 후보 부분까지 상당한 길이를 뜯은 점을 고려하면, 그가 선거 벽보임을 인식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처벌의 강도와 별개로 벽보 훼손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방으로 물든 선거 과정에서 벽보는 그나마 모두가 인정한 기본적 정보와 구호이며, 특정 후보자 벽보의 훼손은 그 자체로 다른 유권자들에게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벽보 훼손은 근절돼야 할 일종의 혐오 범죄로 진단되기도 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한 신지예 후보가 누구보다 벽보 훼손에 시달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를 찢거나 낙서를 할 경우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돼 있다. 선관위와 검경은 후보자의 선거운동용 시설물을 훼손하는 행위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제도는 국민주권 원리를 지탱하는 것이며, 벽보는 절대로 훼손돼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