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러 늑장 제재’에… “美 동맹 약화, 러 반감 키워”

입력 2022-03-02 00:04
공습을 받은 우크라이나 수미주의 아크튀르카 인근 군사기지에서 2월 28일(현지시간) 파괴된 시설물의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늑장 동참하면서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러시아의 반감만 키우는 ‘이중 손해’를 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일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1군 동맹’이 아니라는 의구심이 커지는 결과가 됐고, (제재 대열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러시아 눈에 더욱 띄면서 러시아가 반발하는 등 두 번 손해를 봤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대러 제재 검토 초기부터 제3의 국가에도 적용하는 사실상 ‘세컨더리 보이콧’의 형태를 예고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달러와 미국 기술을 쓰는 나라는 어차피 제재에 동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미국은 동맹국들이 규합하는 형식을 갖추자는 메시지를 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의도를 파악한 동맹국들은 초기부터 ‘스크럼 짜기’에 동참했지만 한국 정부는 경제와 북한 문제 등을 고려해 머뭇거렸다. 이는 미국의 독자적 제재에서 면제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기업들이 지게 됐다.

신범철 백석대 교수는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타이밍”이라며 “우리의 대러 제재 동참 타이밍이 너무 늦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불신을 받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뒤늦은 제재 동참은 러시아의 강한 반발도 불렀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는 28일 기자회견에서 “한·러 관계 발전 추세가 바뀔 것 같다” “남·북·러 프로젝트는 북핵 문제 해결, 남북 관계 등과 긴밀히 연관돼 있는데, ‘한국이 이것을 필요로 할까’ 의심이 든다” 등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러시아가 당장 북한 문제를 걸고넘어졌듯, 우리 정부가 대러 제재에 머뭇거린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였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미국에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가 승기를 잡으면 러시아의 국제사회 영향력이 더욱 커져 북한이 중·러를 뒷배 삼아 미국을 상대로 핵전력 강화에 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재무부에 러시아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금지 외에 추가 수출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28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을 만나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조하겠다는 ‘강한 동참 의지’를 표명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이 차관은 러시아 수출 제재와 관련해 “전략물자 수출금지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아데예모 부장관에게 설명했다.

이 차관이 언급한 추가 제재 방안은 첨단기술·제품 수출과 관련된 내용으로 분석된다. 이 차관은 러시아 금융 제재와 관련해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배제 등 구체적 내용도 관계부처 간 협의·검토가 완료되는 대로 빠른 시일 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