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영웅 아닌 고뇌에 찬 탐정으로 돌아왔다

입력 2022-03-02 04:02
영화 ‘더 배트맨’에서 고담시의 범법자를 응징하며 사는 초보 히어로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은 연쇄 살인마를 쫓는 탐정으로 활약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내가 그림자 속에 숨은 것 같지만 내가 바로 그림자다. 나는 복수다(I am vengeance).”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에 갇혀 사는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이 음침한 고담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린다. 그는 배트맨이다.

가면과 모자, 슈트로 온몸을 가리고 있지만 흔들리는 눈빛,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가면 속엔 부모를 잃은 그 날의 소년이 산다. 아버지 유산도, 회사 경영도 관심이 없다. 집사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의 잔소리엔 짜증을 낸다. 브루스 웨인은 복수를 다짐하지만 혼란에 빠진다. 아버지의 부패한 과거를 알게 되고 살인마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엔 더더욱.

연쇄살인마 리들러(폴 다노)가 고담시장을 살해한다. 시장의 얼굴을 테이프로 칭칭 감은 뒤 피로 “더이상 거짓말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쓴 뒤 사라진다. 배트맨은 시장의 어린 아들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경찰청장 검사 등 부패한 사회 고위층을 차례차례 살해하면서 리들러는 매번 배트맨에게 편지를 남긴다. 배트맨은 살인마가 남긴 단서를 따라 경찰 고든(제프리 라이트)과 함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한다.

부패 관료와 얽혀 목숨을 잃은 친구를 찾아나선 셀리나(조이 크라비츠)와 힘을 합치지만 고담시는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 영화 ‘더 배트맨’은 고담시의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을 그렸다. 살인마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인간 브루스 웨인은 트라우마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선인지 악인지, 복수로 과거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맷 리브스 감독이 만든 ‘더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까지 어떤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악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줬다.

배트맨에 새로 캐스팅된 배우 로버트 패틴슨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열린 화상간담회에서 “과거 배트맨은 시설과 장비, 자기 자신까지 모든 통제가 완벽한 인물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선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장 여정을 중점적으로 다뤘다”고 밝혔다.

리브스 감독은 “배트맨은 사람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전통적인 슈퍼히어로이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자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배트맨은 영웅이 아니라 연쇄살인마를 쫓는 탐정에 가깝다. 리들러도 그간 히어로물에서 그린 빌런(악당)보다 사회부적응자나 테러리스트와 비슷하다. 배트맨과 함께 추리하고 고민하다 보면 러닝타임 176분은 훌쩍 지나간다. 하지만 ‘더 배트맨’은 오락영화라기보단 어딘가 있을 법한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울한 서사다.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의 평이 엇갈릴 수 있다.

개봉 전 예매율 60%를 넘긴 ‘더 배트맨’은 28일 저녁 전야제 상영을 했다.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은 전야제 상영과 개봉일인 1일 상영회차가 거의 매진됐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어 침체된 극장가를 살릴 것으로 극장가는 기대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