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아픔이 있다. 진정으로 화해하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최근 보고서로 내놓은 ‘6·25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총괄한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교수의 소회다. 박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지방에 있는 시골 마을에는 누구네 집은 일제시대 때 친일파 집안이니, 6·25때 빨갱이니 하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서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화해하고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사회 통합과 화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6·25 당시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충남과 전남·북도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개신교)인 1026명, 천주교인 119명 등 1145명을 집단 학살했다(국민일보 2월 23일자 16면 참조).
-6·25 당시 기독교인이 당한 피해 조사는 처음인가.
“한국교계에 순교자 기념사업회가 여러 곳 있고, 자체 희생자를 조사한 곳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왜 기독교 신자들이 타깃이 됐나.
“공산당이 기독교를 반동세력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기독교는 친미주의라고 생각했고, 미국을 적으로 규정한 북한으로서는 기독교인도 동일한 적대 세력으로 본 것이다.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 학살은 일시적,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당시 기독교와 공산당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6·25때 희생당한 기독교인을 두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독교는 투철한 반공 세력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애국과 신앙이 둘로 나눠진 게 아니라 하나였다. 일례로 서울이 수복됐을 당시, 공산당 부역자들을 걸러낼 때 증표가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였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을 만났을 텐데.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이 많았다. 피해자이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생존자는 부모가 기독교인이라고 공산당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는 얘기를 동네 주민으로부터 전해 듣자마자, 동생들을 데리고 밤새 수십 리 길을 도망쳤다. 하지만 그는 정부든 어디에서든 지금까지 어떤 지원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좌우익을 아우르는 대승적 차원의 ‘통큰 화해’를 강조했는데.
“아직까지 진영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이 안타깝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산주의 치하의 부역자(빨갱이)를 보는 시선과 일제시대 부역자(친일파)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 매번 ‘친일파냐 빨갱이냐’가 논란이다.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또 양쪽 진영에서도 서로 잘못한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고 화해하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대화합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