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설마 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금까지의 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목요일 새벽 대국민 연설로 특별 군사작전을 선포하고, 곧바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 포격을 퍼부었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돈바스 지역 원조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러시아는 침공한 지 불과 9시간 만에 키예프 북부까지 진격해 전쟁이 쉽게 끝날 듯 보였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도에 남아 독전했고,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결사항전 태세로 러시아군에 맞서고 있다. 서방 세계도 이전과 달리 일치된 모습으로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목을 누르고 있다. 이에 전쟁 개시 나흘 만에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사실상 결렬됐고,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사이 어린이 등 애꿎은 민간인들의 희생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 간 맺은 협정이나 조약은 언제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깨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경제 지원과 안보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을 하겠다는 민스크 협정도 깼다. 세계사에서 국가 간 협정이 자국 이기주의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1938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맺은 뮌헨협정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듬해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깨졌다.
전쟁 중 핵에 대한 유혹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곧바로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3대 핵전력(Nuclear Triad)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폭격기 운용 부대 모두를 비상태세에 돌입시켰다. 한때 핵 보유 세계 3위였던 우크라이나는 비핵화를 후회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해외 도피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도를 지키며 독전하고 있고, 전직 대통령도 직접 총을 들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로 진격하자 곧바로 해외로 도피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비교된다. 이에 국민들도 결사항전에 임하고 있다. 해외에 있던 수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 다만 이전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자국에 있던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화합을 도모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만 한 것은 실책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우리 정부는 현재 남북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본 것처럼 상대가 기를 쓰고 무시하게 되면 곧바로 종잇조각이 되는 게 국가 간 협정이다. 종전선언을 맺더라도 그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안보를 굳건히 해야 한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하고, 차제에 자체 핵무기 개발 논의도 이뤄졌으면 한다. 끝으로 다음 주에 탄생하게 될 새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면 한다.
모규엽 국제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