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공원주의자

입력 2022-03-02 04:07

관악산에서 나고 자랐다. 커선 인왕산, 낙산, 남산을 거쳐 북악산 자락에 산다. 밥벌이로 평생 난지도, 남산, 노들섬, 관악산, 서울역 고가 등을 떠돌며 산과 숲과 공원과 정원을 만들고 가꾸다 보니, 세상 모든 일에 꽃과 나무로 잣대를 삼는 공원주의자가 됐다. 일견 우아할 것 같지만 물밑에선 늘 치열하고, 작은 싸움과 큰 전쟁이 난무하는 그 틈바구니에서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걸 배웠다. 하긴, 도시의 그 날것이 매력이다.

세상 모든 도시는 강을 품고 그것으로 도시를 표상하지만 서울은 ‘(한)강의 도시’ 이전에 ‘산의 도시’다. 조선조 서울의 경계가 내사산이었고, 대한민국 서울의 경계가 외사산일 정도다. 도시가 온통 울룩불룩 언덕과 산으로 가득하며, 그 사이사이 물이 흘러내린다. 서울뿐인가. 어릴 적 국토의 70%가 산이라 배웠고, 그사이 5% 이상 잃어버렸지만, 지금도 가히 산의 나라다.

국립공원이든 도립공원이든 도시공원이든 우리가 산이라 부르는 대부분은 공원이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모든 궁궐도 공원이다. 한강도 중랑천도 안양천도 양재천도 영락없이 공원이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심겨진 정원이나 가로수 한 그루도, 작은 녹지부터 산과 강변과 공원까지도 법은 숲으로 분류한다. 산과 숲과 공원과 정원이 모두 한 두름이고, 공원주의자의 눈엔 모두 공원이다.

코로나가 번성하니 사람이 사람을 떠나 공원으로 숲으로 산으로 강으로 흩어졌다. 집에 틀어박혀서도 작은 정원 같은 야외 공간을 동경하고, 반려식물과 함께 숨 쉬려 애쓴다. 공원주의자는 공원의 주인인 하늘과 바람과 물과 흙과, 꽃과 나무와 새와 곤충 등 모든 자연과 생명을 조화롭게 보살핀다. 더불어 손님임에도 주인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도시의 환란을 잠시 피해 공원에서 편안하게 머물며 행복할 수 있도록 애쓴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그 보살핌과 애씀의 질곡을 조금 보이려 한다. 공원주의자가 살며 사랑하는 흔적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