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J는 저녁형 인간이다. 나중에 들으니 오후 서너시쯤 일어나 저녁 내 사람을 만나고, 자정 무렵부터 밤새 글을 쓴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날,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냄비 앞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의아하던지. 좀 무례하단 생각마저 스쳤다. 물론 “저에게는 지금이 새벽 2시쯤 되는 시각이라서요”라고 재치 있게 이유를 설명했다. 점심을 먹자고 한 내가 죄인이지. 약속을 순순히 받아준 배려가 고마웠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4시쯤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하고, 오전에 모든 작업을 끝낸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책을 읽거나 달리기를 한다.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혹 그 시각을 넘어 잠들면 이튿날 오후에 꽤 피로감을 느낀다. 편의점 창고에서 종종 낮잠을 자는 까닭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 내가 J와 정오에 만났으니, 미국 워싱턴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만큼이나 획기적(?) 이벤트가 성사됐던 셈이다.
알고 보니 우리는 취향이 아주 달랐다. J는 추리·공포·판타지 소설의 마니아를 넘어 전문가 수준이지만, 나는 최근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살인 장면 묘사에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공포영화? 그걸 공들여 왜 보는 건지…. ‘곡성’ 같은 영화는 건너뛰기, 건너뛰기, 건너뛰기 하다가 나중엔 ‘무슨 영화더라?’ 했다. 이러니 나는 온순한 식물남이고 J는 근육질 짐승남 같지만 음악으로 넘어오니 또 대화가 달랐다. 나는 금속성 록밴드 음악을 좋아하는데 J는 의외로(?) 클래식 마니아였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자는데, 그 시각에 나는 잠옷 입고 양치질하고 있어야 한다. 레드 제플린의 ‘굿 타임스 배드 타임스(Good Times Bad Times)’나 들어야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격과 취향이 다른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성정이 비슷한 부부가 다정히 살아가는 정경도 훈훈하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플이 톡탁거리며 백년해로하는 모습 또한 흐뭇하고 재밌다. 단일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룬 것을 우리는 자랑했지만 다양한 문화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인종의 용광로를 이루며 살아가는 풍경 또한 ‘사피엔스’니까 가능한 동질감 아닐까. 한편으로 특정한 무엇을 차별하거나 따돌리지만 않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즐기며 살겠다는 태도 또한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김호연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전혀 불편하지 않은 소설이다. 제목에 ‘편의점’이 들어간 책은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직업적 의무감 때문에 접하게 됐지만, 읽는 내내 “이런 이야기를 펼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우리는 모두 소설 속 등장인물인 시현, 경만, 민식, 인경, 사설탐정 곽, 오 여사로 살고 있다. 주인공이 아니면 어떠랴.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데.
그러고 보면 요즘 ‘불편하다’는 표현을 흔히 듣는다. 이 사진을 보니 불편하다, 당신의 행동이 불편하다, 누구의 견해가 불편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편하다’가 유행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예전에 우리가 “싫어!”라고 했던 말을 지금은 우아하게 “불편하다” 돌려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한다. 그러면서 ‘불편하다’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경향을 본다. 싫은 건 싫다고 당당히 말하는 용기도 좋지만, 때로는 약간의 불편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친절 또한 용기보다 위대하지 않을까. 느긋한 무관심이 친절이 되는 순간도 있다. 지금 어느 쪽에 태도의 무게추를 둬야 할지, 보일락 말락 떨리는 판단의 긴장 속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J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을 먹자고? 저녁 6시, 콜. 김치찌개를 먹자고? 그것도 콜! 김치찌개는 언제나 옳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