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아마추어로 평가받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 이후 전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해외도피 제안을 거절하고 수도 키예프에 남아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지도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1978년생인 그는 과거 드라마에서 청렴한 대통령을 연기하며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2019년 진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곧바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 확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이 지속돼 내치와 외치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 등을 요구하며 양면전술을 폈던 지난 몇 주 동안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사국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는 러시아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도시가 점령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상황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그를 새롭게 각인시킨 건 SNS 영상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에 체포되거나 살해될 우려가 있으니 대피하라는 미 정부의 권유를 거절하고 키예프에 남았다. 이어 SNS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는 여기 키예프에서 우리 영토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것”이라고 독려했다.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결속시키고 각국 시민의 연대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활약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비정부 여론조사 기관 레이팅스가 지난 26~27일 루간스크·도네츠크 지역과 크림반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18세 이상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91%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보다 3배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러시아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 연계 용병 400명 이상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정부 요인을 암살하라는 크렘린궁의 명령을 받고 키예프에서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