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규명 안 된 대장동 자료… 정치권 폭로 도구로 변질

입력 2022-03-01 04:03
연합뉴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대장동 의혹 사건의 수사 기록들이 정치권 ‘폭로의 도구’로 쓰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기록들은 대장동 사건 피고인들이 상대의 발언을 몰래 녹음하거나 검찰에서 제각기 진술한 것으로, 대부분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전언(傳言)의 성격이 강해 재판에서도 아직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은 자료들이다. 검찰 안팎에선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수사 기록들이 외부로 나가 정치 공방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란 지적이 나온다.

28일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통해 이른바 ‘50억 클럽’에 돈을 건네려 했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로 제기됐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19일 검찰 피의자신문에서 “김씨가 한 말”이라며 이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다.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내 “조 회장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언급된 인물들과 일면식도 없다”며 “앞서 검찰 조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진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남 변호사의 피의자신문조서는 김씨와 정영학 회계사 등의 대화가 담긴 ‘정영학 녹취록’과 더불어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가 검찰 조사에서 “제가 한국에 일찍 들어왔으면 (여당) 후보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진술했다는 내용도 법정 공개 전에 외부에 공개됐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TV토론 등에서 녹취록·조서 내용을 언급하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는 일도 반복되는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4차 TV토론 자리에서 정영학 녹취록을 거론하며 “이것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같은 녹취록을 두고 “이 후보가 몸통이란 것이 명백하게 나오지 않느냐”라고 맞섰다.

대장동 피고인들의 사적 대화가 담긴 녹취록과 조서는 검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린 지난해 10월 전후에 확보해 혐의점을 검토했던 자료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진술·취득 시점 등에서 5개월 이상 지났지만, 대선을 앞두고 의혹의 연기를 다시 피우는 형태로 재등장한 것이다. 김씨와 이 후보 측근들이 소위 ‘도원결의’를 맺었다는 의혹이나,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 관련 의혹은 수개월 전에도 제기됐던 의혹의 ‘재탕’ 성격이 짙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장동 사건의 결론이 명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모두 국민이 미심쩍어할 부분들만 거론하며 서로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형사 재판의 증거 자료들을 피고인이나 변호인 등이 외부 반출하는 것은 형사처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사소송법(266조의16)은 서류 사본 등을 소송 준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타인에게 제공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