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비호감 대선 ‘샤이 표심’이 가른다

입력 2022-03-01 04:02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정치분야 방송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샤이(shy) 유권자’ 표심이 이번 3·9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은 숨어 있는 ‘샤이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샤이 유권자란 지지하는 후보는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여론조사 등에서 의사를 밝히지 않는 유권자를 뜻한다. 한 표를 행사할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과는 다른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샤이 유권자들이 유독 중요한 이유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을 꼽는다. 지지 후보는 있지만 이 후보나 윤 후보 모두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어 지지 의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높아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지지층이 적지 않다”면서 “이번 대선의 샤이 유권자 수가 과거 선거 때보다 많고, 그들의 고민하는 정도도 훨씬 더 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이 초박빙 양상으로 흐르는 것도 샤이 유권자들의 값어치를 높이는 요인이다. 샤이 지지층을 더 많이 가진 후보가 청와대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K 연구소장은 샤이 유권자를 5% 정도로 추산했다. 대혼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이번 대선에서는 판세를 좌우할 파괴력이 있는 수치다.

국민일보는 28일 여론조사 전문가와 대학교수 등 정치 전문가 10명에게 샤이 지지층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다수 전문가는 샤이 지지층의 막판 결집이 대선 승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양강 후보 지지율 차이가 1~2% 정도에 그치는 백중지세 형국이 계속되면 샤이 지지층의 선택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후보 가운데 숨은 지지층이 더 많은 후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샤이 이재명’의 우세를 주장하는 측은 여성 표심과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 여론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배종찬 연구소장은 “남녀를 나누는 국민의힘 측의 선거 전략을 두고 여성 유권자의 반발이 크다”면서도 “그러나 욕설 논란 등 때문에 여성들이 대놓고 이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2030세대 여성들은 문재인정부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믿어왔다”면서 “여성 일부가 이 후보 지지를 거부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이 후보를 뽑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당도 여성층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주당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2030 여성 상당수가 이 후보 지지층으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부 친문 유권자도 잠재적인 '샤이 이재명' 후보군이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 후보에게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한 유권자가 그들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2∼24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후보 지지율은 38%를 기록했다. 이는 문 대통령 지지율(43%)보다 5% 포인트 낮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 '샤이 이재명' 유권자들이 윤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결국에는 이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샤이 윤석열' 유권자들의 근거는 역시나 높은 정권교체 여론이다.

김성수 한양대 정외과 교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응답이 최대 60%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후보와 윤 후보 지지율은 박빙"이라며 "이를 봤을 때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 지지 의사를 숨긴 유권자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민주당 지지색이 뚜렷한 40, 50대 사이에서 '샤이 윤석열' 지지자가 있을 수 있다"면서 "주변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이 유권자가 선거의 승패를 바꿀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후보 간 지지율 차이가 클 경우 '밴드왜건 효과'(지지율 1위에게 쏠리는 경향) 때문에 말을 못하는 샤이 지지층이 있겠지만, 박빙인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는 "대장동 의혹 초반에는 샤이 표심이 존재했지만, 두 후보 모두 관련 논란이 나올 만큼 나온 상황에서 샤이 지지층보다는 극성 지지층이 더 많아졌다"며 "이제 '샤이 표심' 다잡기보다는 선거 날까지 부동층의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의 싸움"이라고 내다봤다.

박세환 강보현 박재현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