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우리나라가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뒷북을 치며 실익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를 명백히 침범했기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자 동맹과의 가치 공유 차원에서라도 우리나라가 제재에 신속히 동참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굼뜨게 행동하다 결국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에서 불이익을 받게 됐다. 뒤늦게 조치를 취하기로 했지만 국제 사회에 ‘눈치 보는 나라’로 각인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반도체, 컴퓨터, 통신 등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외국 기업이라도 미국이 보유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든 제품은 수출 전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미국과 비슷한 대러 제재를 발표한 EU 회원국들과 일본, 호주 등 32개국은 이 조치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아 주요 물품 대러 수출 때 일일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적으로 정부의 판단 착오와 우유부단함이 가져온 결과다. 미국과 동맹들은 지난주 초부터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따라 대러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등 한가한 소리를 하다 24일 침공 당일에 제재 동참 막차를 탔다. 더욱이 청와대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 나갈 뿐 독자 제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결국 28일 외교부가 대러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하기로 해 엇박자를 노출했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긴박한 국제정세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EU, 일본 등이 최근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망에서 퇴출시키기로 한 조처에 즉각 동참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쟁 상황에서 정부의 소극적 자세는 동맹들의 불신을 가져와 외교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점을 명심하고 또 다른 실기는 없어야 한다. 제재에 본격 나선 만큼 기업과 거시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 정부와 업계 간 핫라인을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대금 결제, 대체수입선 찾기에 있어서도 빈틈없는 대응이 필요하다.
[사설] 러시아 제재 한 발 늦었지만 국제사회와 보조 맞춰야
입력 2022-03-01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