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지난해 에너지안보와 관련한 19개 위험요소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차단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금융 핵 옵션’으로 불릴 만큼 러시아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를 차단하면 러시아만 돈줄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EU 회원국들은 러시아로부터 가스 40%를 수입하는데 이 결제 대금 송금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러시아에 노출된 서방 은행들의 자금 1200억달러도 동결된다.
더 큰 변수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출 중단 가능성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달 25일 공개한 3가지 시나리오에서조차 스위프트 전면차단과 러시아 보복을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묘사할 정도다.
재주는 러시아가, ‘득템’은 중국이?
지난달 24일 새벽 침공 개시이후 미국과 유럽 영국 등 서방은 1차 경제제재가 약해보인다는 반응이 나오자 이틀만인 26일 스위프트 결제망 배제 방침을 내놨다. 아직 모든 러시아 은행이 아닌 일부 은행에 적용키로 한 것은 이 사안 자체가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위프트를 전면차단할 경우 국내총생산 규모가 1조7000억달러로 우리나라에 이어 세계 12위인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을 2%가량 축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블룸버그의 시나리오 3단계 경고처럼 러시아가 보복에 나설 경우 가스와 석유공급이 끊어지는 상황을 유럽은 물론 글로벌 경제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유럽은 가스공급에 10% 차질이 생길 경우 경제성장률이 0.7% 위축되고, 40% 충격 시에는 성장률 3% 축소로 이어진다. 이는 불황으로 치닫는 걸 의미한다.
제재는 하되 석유와 가스가 정상 공급되는 1단계와 우발적인 송유관 파열로 차질을 빚는 2단계 시나리오에서조차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될 정도면 3단계 후풍풍은 가늠조차 힘들어진다. 특히 신흥국 가운데 국내총생산액 대비 원유수입액 비율이 2.6%로 태국(2.7%)에 이어 2위인 우리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차단되더라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자칫 서방국가 전면제재가 한계에 부닥칠 수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스위프트보다 효율성이 떨어지고 수수료도 비싸기는 하지만 러시아 은행들이 사용할 우회적인 수단으로 텔렉스가 있다고 귀띔한다.
게다가 러시아는 미국 달러 주도의 결제망에서 탈출하기위해 그동안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놨다. 아직은 회원은행이 23곳에 불과하지만 스위프트 차단시 가입이 늘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은행간 국경초월 결제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스위프트 차단으로 가장 큰 수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달러화에 대항해 국제결제 수단으로 위안화를 준비 중인 만큼 이번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네퓨 전 국무부 제재 담당 관리는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전면 차단된다면 다른 메시지 수단과 빠르게 연동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과의 연대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렇게 될 경우 달러위주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훼손됨은 물론 돈의 흐름을 추적하기가 불가능해져 대러시아 제재 레버리지마저 사라질 수 있다.
미 연준도 금리인상 숨고르기?
한국은행은 그동안 인플레 압력이 거세지자 3차례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가장 먼저 금리를 동결함에 따라 또 다른 선례를 남길 여지가 커졌다.
올들어 ‘매파’적 스탠스 강화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2주정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아직까지 3월 금리 인상은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달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6.1%로 42년만에 최고치를 보이고 소비지출도 10개월만에 늘어나는 등 금리인상폭을 0.5%포인트나 올려도 이상하지 않으리 만큼 인플레 압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확실성 때문에 연준이 금리인상에 점진적인 접근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수출 중단 등 보복조치가 감행될 경우 연준은 물가보다 경기를 중시하는 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지만, 이로 인해 인플레가 훨씬 더 심각해질 경우 금리인상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바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을 의미한다. 오는 2~3일 하원과 상원에서 증언을 앞두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어떤 발언을 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오는 10일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고공행진중인 에너지가격이 소비자물가에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 지역의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다시 사상최고치를 찍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당초 오는 10월 한차례 인상을 비롯해 연간 0.4%포인트 인상 관측이 유력했으나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골드만 삭스는 강력한 노동시장과 인플레 전망으로 ECB의 하반기 출구전략 시동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고조되는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 두차례 예상되는 금리 인상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일 호주의 중앙은행을 비롯해 이번주 캐나다,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이 금리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통화정책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