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핫라인 잡아라”… 기업들, 美정계거물 잇따라 러브콜

입력 2022-03-01 04:03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이 한반도 문제를 경험한 미국 고위 관료 출신의 ‘친한파’ 인사들을 잇따라 영입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등으로 우리 기업의 미국 내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데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공급망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어느 때보다 미국 정계와의 ‘채널’ 확보가 중요해졌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LG는 조만간 개설할 워싱턴사무소의 공동 소장으로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영입했다. 헤이긴 전 부비서실장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4명의 공화당 대통령·부통령을 15년간 보좌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이긴 전 부비서실장은 의회, 정부 등을 상대로 하는 LG그룹 미국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대표적 ‘친한파’인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를 북미법인(SEA) 대외협력팀장으로 선임했다. 리퍼트 전 대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2014~2017년 주한미국대사로 활동했다. 리퍼트 전 대사는 1일부터 워싱턴사무소를 이끌며 미국 정부를 상대하는 대관업무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포스코는 지난해 9월 대북통으로 알려진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을 미국법인 고문으로 위촉했다. 쿠팡은 지난해 8월 대북특별부대표였던 앨릭스 웡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공공관계 총괄임원으로 임명했다.

또한 주요 기업은 총수가 직접 나서 미국에서 활발하게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6~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린 ‘제1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를 주도했다. 행사에는 한·미·일의 전현직 관료, 학계·재계 인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태평양과 동북아시아 현안을 분석하고 해법을 논의했다. SK그룹에 따르면 당시 존 오소프 상원의원(조지아주), 척 헤이글 전 국방부 장관,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주) 등의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18~19일(현지시간) 워싱턴DC를 찾아 의회 핵심 의원들,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안건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이었다. 이 부회장은 연방의회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을 담당하는 핵심 의원들을 만나 관련 법안 통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네트워크’ 구축에 전력투구하는 배경에는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중 갈등 심화, 공급망 리스크 등이 자리한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의 성장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이 미칠 파급력은 한층 커졌다.

미국에서의 투자 규모 등이 커지면서 관계 강화는 한국 기업에 필수요소가 됐다. 현재 미국 워싱턴DC에 사무소를 낸 한국 기업의 수는 10곳을 넘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SK그룹, SK하이닉스, 포스코, 한화디펜스,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에 이어 LG그룹이 조만간 사무실을 연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 큰 시장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확대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를 영입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점차 자국 이익을 보호하는 데 점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동향을 적절하게 파악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시장에서 뜻하지 않은 정책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거나 해당 기업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행정부에 전달할 수 있도록 정·관계 인사들을 영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