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역대급 ‘불대선’ 대처법

입력 2022-03-01 04:03

수험생들이 가장 당혹해하는 순간은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문제를 만났을 때다. 이번 대선이 딱 그렇다. 여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가 유권자들에겐 낯선 유형이다. 두 후보 모두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등장한 대통령들과 달리 의회 정치를 경험해 보지 않은 이른바 ‘0선’이다. 여당 후보는 ‘민주당 계열’ 정당이 배출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다른 면모가 많다. 이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보가 정통 민주당 지지자들에겐 영 어색하다. 검찰총장 출신 제1야당 후보는 또 어떤가. 자신이 구속하고, 기소했던 전직 대통령이 몸담았던 당에 입당해 3개월 만에 대선 후보 자리에 올라섰다. 그것도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던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매 대선 이후 실시했던 ‘유권자 의식조사’를 보면 지지 후보를 결정한 시기가 투표일 3주 이상 전이라는 응답이 대개 절반을 넘지 못했다. 3주 전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TV 토론이 본격화할 시점인데 이때까지 후보를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마음을 줄 후보가 없거나 기분만 가지고 투표할 수 없다는 신중형이거나.

20대 대선이 8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일부는 ‘불수능’ 못지않게 후보 고르기가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도 한몫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 등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빌리면 유권자들의 후보 선택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 후보가 좋아서 ② 다른 후보가 미워서 ③ 나에게 이익이 돼서(국가에 더 필요한 사람이라서). 1번과 2번의 이유라면 이미 표심은 결정돼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직 누구를 찍을지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 무관심층이거나 3번 유형, 즉 신중한 유권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선거 공보물과 TV 토론을 꼼꼼히 챙기면서 누가 나에게 도움이 될지, 또는 누가 대한민국을 잘 이끌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 최종 선택할 개연성이 높은 부류다.

이번 대선은 ‘단일화’라는 변수 못지않게 정책이 승자를 결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강 후보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어 부동표가 승패를 결정할 모양새인데 그 상당수가 신중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의 승부처가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신중형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에 영향을 미칠 요인은 뭘까. 천차만별이겠지만 아무래도 시대정신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지난 대선의 시대정신은 압도적으로 ‘적폐청산’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 부동산정책 실패와 양극화 심화 등 경제 문제가 원인이다. 결국 초점이 국민 삶의 변화에 맞춰지고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되는 정책을 내놓은 후보가 더 많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막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져 외교안보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먹고사는 문제만큼 절실하진 않다. 국민 대다수가 ‘절대악’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사법개혁’이나 ‘적폐청산’ 등의 구호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새 대통령 선출이 임박했지만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다. “이번은 처음으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이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수가 적은 선거다”(이홍구 전 국무총리)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선택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더 관심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삶과 직결된 복지정책 등을 다루는 마지막 대선 TV 토론이 2일 열린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 이번 토론을 꼭 챙겨보길 바란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