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전쟁, 신냉전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

입력 2022-03-01 04:04

전쟁이라는 먹구름이 세상을 덮친 듯하다. 폭탄이 폭발하는 소리와 피난민의 울부짖는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를 공포로 몰고 있다. 신냉전 시대의 서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간 안에 마무리될지라도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양상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단순히 국가 간 갈등이 아니라 진영 대 진영의 기 싸움이 예상된다. 전쟁의 먹구름이 경제에도 찾아오는 순간이다.

“러시아는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다(Russia will pay an even steeper price).”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고다. 바이든은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 발표했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 유럽 동맹국들과 공동 대응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해왔다. 러시아가 전쟁을 확대한다면 미국은 경제 제재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 갈등 시나리오를 그려야 한다. 미·중 패권 전쟁이 과거 5년의 세계 경제를 제약했다면 미·러 갈등은 향후 5년의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크림반도 공습 당시 서방의 대응, 미·중 패권 전쟁, 이란 핵 제재,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일본의 3대 반도체 소재 공급 차단 등과 같은 근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이 닥쳐올지 그림을 그리고 가용 가능한 플랜B와 플랜C를 마련해야 한다.

첫 번째 위협은 무역 차질과 기업 경영난이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 대상국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구조물, 합성수지 등을 수출하고 있다. 한국 기업 40여개사가 러시아에 진출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연 23만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깔루가 생산법인을 통해 가전제품을 생산 중이다. 오리온은 러시아에 3번째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러시아 현지 기업뿐만 아니라 여기에 연관된 수출 중소기업들까지 봉쇄에 따른 물류난과 경영 악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위협은 금융 불안이다. 변동성 지표(VIX, Volatility index)는 최근 1년 내 최고점을 향해 움직이고 있고,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금값이 치솟았지만 공격적 자산 성격의 주식시장에선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크림반도 사태 때도 주가가 19% 빠졌듯 우크라이나 전쟁도 주식시장에 상당한 압력을 가져왔다. 전쟁 리스크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엎친 데 덮친 듯하다. 더욱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금융기관을 배제하는 제재는 국제 금융시장의 상당한 혼선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대금결제회수를 지연시키고, 우회 결제에 따른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세 번째 위협은 스태그플레이션 함정이다. 이미 세계 경제는 공급망 병목 현상이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었고, 러시아 제재는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러시아는 세계 원유의 2위 생산국이고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과 같은 광물 자원국 중 하나다.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나프타, 원유, 유연탄,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고, 동시에 실물경제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을 결박하는 듯하다. 고물가를 잡자니 경기 침체가 걱정인 것이다. 즉, 신냉전발 경기 침체가 기준금리 정상화 속도에 제동을 걸게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게 만든다.

먼 나라에 전쟁이 발생했지만 세계에는 신냉전 시대가, 한국 경제엔 스태그플레이션이 몰려오고 있다. 경제 제재에 따른 초단기적 대응력을 갖추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구조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