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의 부메랑… 스포츠계 ‘러시아 보이콧’ 들불

입력 2022-02-28 04:07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체방크파르크에서 26일(현지시간) 열린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에른 뮌헨의 2021-2022 분데스리가 24라운드 경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그만 둬 푸틴’(Stop It Putin!) 문구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러시아 보이콧’이 국제 스포츠계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제체조연맹(FIG)은 26일(현지시간) 집행위원회를 열고 올해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예정된 FIG 월드컵과 챌린지컵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FIG 주관 대회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기·국가 사용도 금지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조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앞서 성명을 내고 패럴림픽 폐막 일주일 뒤까지 휴전하겠다는 결의를 러시아 정부가 위반했다고 규탄하며 국제 스포츠 단체들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열기로 한 스포츠 행사를 이전·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러시아 대회를 강행하려다가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FIVB는 오는 6~7월 러시아에서 치를 예정인 국가 대항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다른 곳에서 치르기로 했다.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등 러시아에서 개최 예정인 다른 대회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FIVB는 전날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돼야 한다”며 세계선수권대회의 러시아 개최 강행 의지를 내비쳤지만, 평화를 강조하는 스포츠정신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배구연맹도 FIVB와 유럽배구연맹(CEV)에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이라며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지를 변경해달라”고 촉구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플레이오프(PO) 경기에서도 보이콧 움직임이 이어졌다. 스웨덴축구협회는 “월드컵 PO에서 러시아와 맞붙으면 경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다. 칼-에리크 닐손 스웨덴축구협회 회장은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침략으로 축구 교류가 불가능해졌다”며 “러시아가 참가하는 PO 경기를 취소할 것을 FIFA에 촉구한다. FIFA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러시아와 경기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 장소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스 파리로 변경했다. 포뮬러1(F1)을 주관하는 세계자동차연맹도 9월 러시아 소치에서 예정된 F1 월드챔피언십 러시아 그랑프리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명예회장인 국제유도연맹도 오는 5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를 취소했다.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러시아 항공사 아예로플로트와 4000만 파운드(약 645억원) 후원 계약을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 명문 샬케04는 16년간 메인스폰서였던 러시아 석유회사 가즈프롬 로고를 유니폼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첼시를 EPL 명문구단으로 만든 러시아 출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구단 운영 권한을 첼시 구단 산하 공익재단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첼시에서 손을 떼라는 압력을 받았다. 토마스 투헬 첼시 감독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다면 (리버풀과) 카라바오컵 결승에서 진다고 해도 행복할 것”이라는 소신발언을 남겼다.

EPL 에버턴과 맨체스터시티의 26일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우크라이나 국기와 전쟁반대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연대를 표했다. 팬들은 우크라이나 지지 현수막을 내걸고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경기 전 우크라이나 국가도 연주됐다. 우크라이나 대표팀 소속인 맨시티의 올렉산드르 진첸코는 눈물을 보이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로 등극한 러시아 출신 다닐 메드베데프는 “세계랭킹 1위는 어릴 적부터 목표였지만 지금은 즐길 수 없다”며 “테니스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늘 생각했다. 감정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