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발 살아계세요” 국내서도 눈물의 반전 집회

입력 2022-02-28 00:05
한국 거주 우크라이나인 등 250여명이 27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참석자들이 ‘우리는 한국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최현규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땅에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는 내용의 우크라이나 국가가 울려 퍼졌다. 경찰 추산 250여명의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모여 우크라이나어와 영어, 한국어로 “푸틴은 우크라이나 대량학살을 당장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행진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흘렀다.

김재혁(34)씨는 부인 김카트리나(36)씨와 함께 시위에 참석했다. 경기도 군포에 사는 김씨 부부는 시위 참석을 위해 휴일 아침 일찍 서울로 향했다. 국내 한 놀이공원 공연팀에서 일하는 김씨는 우크라이나 출신 무용수였던 카트리나씨를 공연팀에서 만나 결혼했다. 카트리나씨의 고향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다. 이날 러시아군은 이 도시까지 진입했다. 카트리나씨는 고향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조카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고 했다.

그는 “엄마와 화상통화를 하면 폭발음과 총성이 바로 내 눈앞에서 난 것처럼 선명히 들린다”고 흐느꼈다. 김씨는 “장모님께 긴급지원 물품이라도 보내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우크라이나로 가는 모든 우편이 중단됐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으로서 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반전 시위 참석뿐이라 답답하다”고 했다.

행진하는 인파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도 터져나왔다. 청록색 패딩점퍼에 분홍색 마스크를 낀 에밀리아(4)양은 아빠 손을 꼭 잡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에밀리아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손에 들린 자그마한 우크라이나 국기가 함께 펄럭였다. 집회 질서유지 일을 맡은 니콜라이 프로토포포프(36)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들과의 인연으로 시위에 참석한 한국인들도 있었다. 외국 모델들의 국내 활동을 돕는 회사 직원 이주환(31)씨는 4명의 외국인 동료와 거리로 나왔다. 이씨는 “한국에서 모델로 일하다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친구도 전쟁에 참전했고 왼쪽 팔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역사가 겹쳐 보여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도 평화 집회에 나섰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반전 집회에 참석한 러시아 유학생 알레나 브레예바(28)씨는 “푸틴을 뺀 대다수 러시아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한다”며 “우리는 친구와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