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군산조선소 재가동 확정… 경제 부활 ‘진정한 봄’ 꿈꾼다

입력 2022-02-28 21:15
군산조선소의 세계 최대 규모 골리앗 크레인(1650t)과 도크. 지난달 25일 군산 제2국가산업단지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동문 건너편에서 바라본 공장 전경. 군산시 제공

‘군산의 꿈을 이뤘습니다.’ ‘약속을 지켜줘 감사합니다.’ ‘재도약하는 군산의 힘찬 도약을 기대합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협약식이 열린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 자동차로 돌아본 전북 군산시내 곳곳에는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시청 앞은 물론 제2국가산업단지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동문 앞에는 많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동안 썰렁한 빈집만 지켜야 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지요.” 문이 닫힌 군산조선소 동문을 지키고 있던 한 직원은 “조만간 힘찬 기계소리가 다시 들릴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5년 전 개업했어요. 그런데 딱 두 달 뒤 조선소가 문을 닫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지.” 조선소 인근에서 정성식당을 운영하는 신명옥씨는 “그동안 재가동을 학수고대했으나 말만 무성해 반신반의했다”며 “이번에는 대통령도 왔다 가셨으니 믿고 기다린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확정했다. 4년 7개월만의 일이다.

2010년 3월 문을 연 군산조선소는 2016년까지 해마다 10척 안팎의 선박을 건조했다. 당시 조선분야의 노동자 수가 군산 노동자의 24%에 달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조선업 불황 장기화와 경영 악화를 이유로 2017년 7월 군산조선소의 가동을 중단했다.

86개 협력업체 가운데 56개가 줄줄이 폐업했다. 사내 외 5250명의 노동자 중 47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가족을 포함, 2만여명이 생계 위기에 내몰렸다.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마저 문을 닫으면서 군산지역에는 20년 전 IMF시절보다 더 가혹한 폭풍이 불어 닥쳤다. 여기에 코로나19 충격까지 더해지며 27만 8000여명이던 시 인구는 5년새 1만 4000여명이 줄었다.

그동안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위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전북도민 100만명이 존치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시민들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자택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하기도 했다. 황관선 군산시 산업혁신과장은 “우리 시와 전북도가 그동안 청와대와 총리실, 중앙부처, 현대중공업에 재가동을 건의한 것만 46차례다. 각계에 지원을 요청한 것을 합하면 220차례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길가에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축하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이와 별도로 군산시와 시민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는 2018년 9월 군산사랑상품권을 발행, 지역자금의 외부 유출 방지와 소상공인 돕기에 나섰다. 이 상품권은 지난해까지 1조 4600억원어치가 판매되며 전국 모델이 됐다. 2020년 기준 가맹점 한 곳 당 4153만원의 매출이 상승하는 등 큰 효과를 내고 있다. 더불어 시가 출시한 공공배달앱 ‘배달의 명수’도 홈런을 쳤다.

다행히 ‘군산 상생형 일자리’도 안착하고 있다. 대표 기업인 명신은 지난 4일 미국 기업과 3년간 18만대의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는 본 계약을 체결했다.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이 확정됐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본격 재가동은 내년 1월부터다. 그사이 1700여일간 묵혀 있던 기계들의 먼지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규모 또한 완성품이 아닌 연간 10만t 규모의 블록(조각) 제작이 전부다. 예전 같은 선박 건조가 언제 이뤄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군산시민들은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1650t)을 갖추고 군산 수출의 20%를 담당하던 군산조선소의 정상화를.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던 재가동 협약식장에 내걸린 대형 화면의 글귀는 ‘군산의 봄’이었다. 3월을 맞은 항구도시 군산, 겨울 바닷바람은 여전했지만 곳곳에 새싹이 솟아나고 봄기운이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다.

강임준 군산시장
“위기가 곧 기회… 서해안 조선업 중심지로 도약할 것”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믿고 힘을 모아준 시민들과 기업체 관계자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달 25일 시장실에서 만난 강임준 군산시장(사진)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위해 수백차례 목소리를 냈으나 5년의 힘겨운 시간이 지나서야 오늘이 왔다”며 “늦었지만 27만 군산시민들과 함께 기쁘게 환영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가동 중단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습니다. 그러나 위기일 때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강 시장은 “이번 기회를 살려 군산이 중소형·특수 선박 중심의 핵심 인프라를 집적화해 서해안 조선업 중심지로 도약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앞으로 배정 물량을 확대하고 LNG·LPG 탱크 제작 등 ‘완전하고 지속적인 가동’을 약속했다”며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효과는 계속해서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정상화를 위한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관련 인력 확보와 양성을 꼽고 이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출퇴근시 공단대로에 차가 밀리고 있어 기분이 좋다”고 전제한 강 시장은 “‘군산형 일자리’ 안착 등으로 활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새만금 산단의 입주 기업들과 함께 ‘제2의 도약기’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군산조선소 뿐만 아니라 새만금스마트그린산단과 전기자동차 등 우리 군산에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중심으로 강하고 굳건한 지역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 시장은 “붕괴됐던 조선 산업과 지역경제가 활성화돼 군산에 ‘진정한 봄’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 군산=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