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강조하던 文대통령, “주력 활용” 돌변한 까닭?

입력 2022-02-28 04:03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 중 60번은 ‘탈원전’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 등 각종 악재 발생에도 굳건히 추진했던 이 과제가 정권 말 갑자기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원전은 주력 기저전원”이라 치켜세우는 등 미묘한 기류 변화가 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이 문 대통령을 물러서게 만든 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지난 25일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에서 문 대통령이 원전을 ‘주력’이라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도 “이른 시간 내에 단계적으로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해달라”고 강조했다. 원전 가동을 독려한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이번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불안감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각종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두바이산 원유 가격은 지난 25일 기준 배럴 당 95.84달러를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세다. 최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3월물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장중 100만btu(열량 단위) 당 4.8달러까지 치솟았다. 전달 대비 17%나 급등했다. 한미 양국 에너지 장관이 26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공조 방안을 논의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다.

이는 전력 생산 단가를 끌어올린다. 27일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가격 영향이 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 비중은 2020년 기준 각각 35.6%, 26.4%에 달한다.

반면 원전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적고 전력 생산 단가도 싸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대로라면 2050년이면 6.1%로 비중이 쪼그라드는 원전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란 예기치 않은 변수가 등장하면서 향후 상황을 전망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당장은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