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이후 자본시장은 상당한 변화가 예고돼 있다. 여야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면서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증권 투자 관련 세제 개편은 물론 주식 공매도 제도 보완 등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누가 당선이 되든 새 정부는 세밀한 정책조합을 통해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내년에 도입될 예정인 주식양도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누가 되든 2개의 세금 중 하나는 투자자의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에게도 일괄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증권거래세 문제를 이번에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증권 거래에 붙는 세금의 세율은 0.23%이다. 코스피 시장에선 주식 매도 대금의 0.23%(증권거래세 0.08%, 농어촌특별세 0.15%)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는 증권거래세를 제외한 농어촌특별세 0.15%만 부과할 예정이다. 코스닥 시장에선 현재 증권거래세율 0.23%가 적용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0.15%의 세율이 적용될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부터는 주식 양도 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이 강화된다. 현재 양도소득세는 본인 포함해 직계존비속이 1개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했을 경우에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주식 보유액이나 지분율과 상관없이 연 5000만원 이상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 최대 25%의 양도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증권업계에선 내년에 주식양도소득세를 부과키로 한 상황에서 증권거래세까지 거두면 투자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와관련 증권거래세와 주식양도소득세 둘 중 어느 것을 폐지할 것인지를 놓고는 여야 후보 간 설전도 벌어졌다. 이 후보는 지난 2월 3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윤 후보를 향해 “양도세는 대주주가 대상이고 증권거래세는 개미 (투자자들) 대상인데 대주주들을 면제해주고 개미에게 (세금을) 부담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윤 후보는 “개미들이 원한다. 주식시장에 큰손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증권거래세와 주식양도소득세 중 하나를 선택해 폐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증권거래세를 폐지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초단타 매매가 더 증가할 수 있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에 대한 세금 부과도 할 수 없게 된다. 주식양도소득세의 경우엔 대다수 일반 투자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여야 후보 모두 이런 한계를 일부 반영해 공약을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의 경우 증권거래세 폐지를 공약했지만 유가증권시장 증권 거래에 부과하는 농어촌특별세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이 후보는 “농어촌특별세 재원은 금융소득세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향후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자신의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공약을 한시적 정책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윤 후보는 “우리 증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면서 주식양도세로 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주식 관련 세제 변화는 영향력이 전 국민에게 미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18일 기준 주식 거래 활동 계좌 수는 6004만183개로 집계됐다. 지난 1월 기준 국내 주민등록인구가 5163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 1명이 주식 거래 계좌를 1개 이상씩 갖고 있는 셈이다.
다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증권 세제가 실제 바뀔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다. 정부 입장에선 매년 평균 8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를 일으키는 증권거래세 폐지를 받아들이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2021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거래세는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지난해 10조3000억원 걷힌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여야 후보들은 이미 코로나19 대응뿐 아니라 막대한 예산 투입을 해야 하는 각종 선심성 공약을 내놓은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에 따르면 2023년부터 증권거래세를 폐지할 경우 연 평균 8조4000억원 가량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제 개편도 필요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투명화, 기업 실적을 올리기 위한 정책 지원이 종합적으로 뒷받침돼야 증시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개인 투자자 보호 강화는 필수적이다. ‘코스피지수 5000’ 달성을 내세운 이 후보는 주가조작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고 주식 공매도 시 외국인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주식 차입 기간이 다른 점을 개선하는 공약을 내놨다. 윤 후보도 주가조작 범죄 엄벌을 약속했고,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시 주식 거래를 일시적으로 막는 ‘공매도 서킷브레이커’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물적 분할 자회사의 상장을 금지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주주 대표소송 요건을 완화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상엽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27일 “여야 후보들이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공약을 많이 낸 상황에서 증권 거래 관련 세금을 곧바로 폐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새 정부는 여러가지 정책적 조합을 통해 최적의 증시활성화 방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