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입문자들 ‘가방’ 대신 ‘신발’ 더 많이 샀다

입력 2022-02-28 04:04
서울 송파구 한 백화점의 샤넬 매장 앞에서 '오픈런'으로 번호표를 받은 소비자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직장인 차진영(30·가명)씨는 최근 친구와 함께 명품 ‘오픈런’에 동참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오후 3시쯤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아 놓은 돈으로 가방을 사려고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가방 대신 스카프와 구두를 샀다. 차씨는 “사고 싶었던 가방은 입고가 안 돼서 살 수 없었다. 어렵게 입장했는데 빈손으로 나가기 아까워서 소품으로 샀다.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명품 열기에 올라타면서 신발, 스카프 등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제품으로 명품에 입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지갑이나 립스틱 같은 소품이 ‘명품 입문용’ 대표주자였다면, 최근에는 리셀이 용이하고 실용적인 신발이나 패션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스카프 등이 ‘입문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은 빅데이터 조사로 확인된다. 27일 롯데멤버스가 발간한 ‘라임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명품 입문자들이 대거 포진한 20대에서 구매 건수가 급증한 품목은 여성화(174.7%)였다. 라임 리포트는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12월 말 기준 4130만명인 롯데멤버스 회원의 소비 행태와 롯데 계열사의 결제·상품·브랜드 데이터 등을 포괄해 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8~2019년 대비 2020~2021년 명품 판매량을 비교 분석해 작성됐다.

2020~2021년 명품 판매량은 2018~2019년 대비 23.0% 증가했다. 품목별 상세 데이터를 살펴보면 ‘명품 여성화’ 판매 추이가 눈길을 끈다. 2018년 대비 지난해에 명품 신발 구매건수는 전반적으로 134.9% 늘었다. 20대뿐 아니라 30대 여성(134.3%), 40대 여성(121.5%), 50대 여성(190.9%), 60대 이상 여성(151.1%) 모두 최소 2.2배 이상 상승세를 보였다.

명품 입문용으로 신발을 구매하는 사례는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명품 남성화 구매 증가 추이도 20대(44.1%), 30대(79.6%), 40대(90.7%), 50대(82.7%), 60대 이상(74.7%)에서 고르게 오름세를 보였다. 남녀 통틀어 신발 구매 건수 증가 추이는 명품 판매량 전체 증가율의 2~8배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코로나19를 겪으며 강화됐다고 본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흐름이 명품으로 쏠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명품 구매에 거리낌이 적고 적극적인 소비층이면서 입문자가 다수인 20대의 경우 여성화(174.7%), 여성의류(95.3%), 보석(93.1%), 패션 액세서리(79.2%), 여성가방(77.3%) 순으로 높은 구매 증가율을 기록했다. 30대 또한 여성화(134.3%), 시계(117.1%), 여성가방(87.5%), 보석(81.2%) 순이었다. 김근수 롯데멤버스 데이터사업부문장은 “명품 시장이 대중화되면서 과거 가방 등에 집중됐던 여성들의 명품 소비가 신발과 주얼리, 스카프, 모자 등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명품 구매 증가는 ‘플렉스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다만, 최근에는 가격과 실용성을 꼼꼼히 따진다. 리서치 플랫폼 라임이 지난해 11월 22일부터 12월 3일까지 조사한 결과, 명품 구매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디자인(46.7%), 브랜드 가치(31.1%), 구매가격(32.5%), 실용성(26.1%) 등이 꼽혔다(중복응답 포함).

글·사진=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