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의 촛불이다. 동·남·북 3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러시아군의 총공세에 우크라이나 전역이 유린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단독으로 세계 2위 군사력의 러시아군을 물리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은 결사항전 태세로 러시아군에 맞서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도 키예프를 지키며 독전하고 있고, 전직 대통령도 수도 사수를 위해 기꺼이 총을 들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로 진격하자 국민을 버리고 대통령이 먼저 내뺀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너무 대비된다.
미국과 나토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미군이나 나토군을 파병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 가장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나치가 독일어권 지역을 독일 영토로 삼으려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했을 때 미국과 서유럽이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1938년과 매우 흡사하다. 서방의 미온적 대처는 히틀러의 야욕만 키워 2차 세계대전 발발의 도화선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고립무원의 상태다. 파병 등 서방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없을 경우 우크라이나 굴복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대만이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소극적 대처를 보며 중국이 푸틴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군사 도발에 비군사적 수단으로 대응하는 건 한계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No War Save Kiev’를 외치는 반전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남북미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서조차 반전 열기가 뜨겁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일 재의 수요일을 ‘평화를 위한 금식의 날’로 정해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자고 세계에 호소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80여명은 26일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조국의 평화와 안녕을 기도했다. 세계 곳곳의 절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