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푸틴 제재가 성공하려면

입력 2022-02-28 04:08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26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앱스토어 접속 차단을 포함해 러시아에서 애플 제품과 서비스 공급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날 쿡 CEO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적 노력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하자, 우려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라고 호소한 것이다.

자본의 논리는 대의명분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점에서 애플이 실제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애플은 중국의 인권 문제엔 침묵하고 중국 정부와 협력을 선택했다. 기업 입장에서 거대한 이익을 포기하고 장부에 기록되지도 않을 명분을 선택하긴 어렵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자 미국과 서방 세계가 군사적 대응 대신 경제 제재 카드를 채택한 이유다.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건 3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경제 제재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다. 문제는 제재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다. 제재에 참여하는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세탁된 자금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면서 “서방 세계가 의지를 보여준다면 제재는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은 “서방 세계가 자신의 부패를 감수할 의지가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전제를 달았다. 러시아의 검은돈이 서방 세계에 흩어져 있고, 이를 자양분으로 굴러가는 사업 모델이 많기 때문에 제재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러시아는 천연자원 등을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이 중 상당 부분은 푸틴 등이 해외에 비자금으로 빼돌린 상태로 알려졌다. 특히 영국에 자금이 많이 몰려서 ‘런던그라드(Londongrad)’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재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러시아와 깊이 엮인 경우가 많고, 러시아 돈세탁에 관련된 사람들의 고통 감내 없이는 자금 추적이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평가받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퇴출이 합의된 것은 긍정적이다. SWIFT는 전 세계 금융기관이 결제 주문에 사용하는 전산망이다. 여기서 빠진다는 건 온라인으로 대금 결제를 못 한다는 의미로, 사실상 러시아는 수출 길이 막히게 된다. 당초 독일 이탈리아 등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SWIFT 제재에 미온적이었으나 전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력한 제재로 이어졌다.

관건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에 제재를 지속할 수 있을지 여부다. 제재는 당하는 러시아에 분명 큰 고통을 주지만, 반대로 가하는 서방 세계도 타격을 받는다. 당장 SWIFT 제재로 독일 등은 그동안 러시아에서 의존하던 천연가스 대체 공급처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버틸 수 있지만, 이번 사태가 빨리 끝나고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원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게 그들이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청와대는 “독자적인 제재는 하지 않지만,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재에 동참할 명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경제적 고통을 모두 감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우리 수출의 1.6%를 차지하고, 세계 12위 교역국이다. 사태가 길어지면 우리 경제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벌써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강력한 제재로 빠른 시간 내에 이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