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투표소 가는 길

입력 2022-02-28 04:06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일이 이번 주로 다가왔다. 3월 4~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의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 누구나 미리 투표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나 격리자가 사전투표를 하려면 사전투표 이틀 차인 5일에 한해 외출 허용 시각부터 오후 6시 이전까지 사전투표소에 도착해야 한다.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선은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첫 대선이었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26.06%로, 전체 투표율 77.2%의 3분의 1 정도였다.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은 20.14%였고, 2020년 총선에선 26.69%로 늘었다. 당시 총선의 전체 투표율이 66.2%였던 것을 고려하면 실제 투표를 한 유권자 중 사전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의 비중은 19대 대선보다 더 커졌다.

지난 선거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거의 사전투표소에 있었다. 선거 당일이 법정 공휴일이긴 하지만 입사한 이후 거의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늦잠이라도 잤다간 출근 전에 투표를 못 할 수도 있고, 퇴근한 이후에 주소지 근처로 갔다간 이미 투표소가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투표하지 못한 마음을 두고두고 찝찝해하느니 미리 투표하자는 생각이 컸다. 사전투표일에는 지나가다 보이는 어느 투표소에라도 들어가 신분증만 내밀면 투표할 수 있다는 것도 꽤 편리했다. 투표일 당일에 가야 하는 투표소는 가본 적이 없어 어딘지도 모르는 주민센터인 경우가 많았다.

그간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특정 정당에 더 유리하다는 정치공학적 계산들은 맞지 않았다. 19대 대선 당시 20대의 사전투표율은 다른 세대보다 높았지만 투표를 먼저 했다고 해서 후보 지지 성향이 달라지진 않았다. 투표소에 미리 간 유권자들이 있을 뿐 사전투표 자체가 누굴 뽑을지 결정하는 요인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사전투표소로 향하던 과거의 나도 일찍이 마음을 정한 터라 언제 투표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좀 다르다. 사전투표일이 당장 이번 주인데 누굴 뽑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후보별 10대 공약을 훑어봤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코로나19 완전 극복’이나 ‘주택 250만호 공급’ ‘한반도 평화 통일’ 같은 공약은 약속한다고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10대 공약의 숫자를 맞추려고 이것저것 다 가져다 끼워 넣은 것 같은 인상마저 든다.

대통령이 되면 당장 거리두기 단계를 완화하겠다거나 방역지원금을 최대 1000만원까지 주겠다는 외침에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다.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목숨줄을 놓고 베팅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절박한 이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대선 주자들에게는 한 표도 주기가 아깝다.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적 여파나 확진자 수 폭증 같은 실증적 데이터보다는 일단 풀어주고 보겠다는 막무가내식 주장에 표를 줄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벌써 주변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누구도 뽑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세도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지난 23~24일 조선일보·TV조선·칸타코리아가 전국의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본인이나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된다면 투표를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21.0%가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기꺼이 투표소로 향하게끔 하는 후보가 이제라도 나타났으면 한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는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악영향만 줄 뿐이다. ‘덜 나쁜 대통령’을 뽑으러 투표소에 가고 싶은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남은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이 해야 할 말은 다른 후보가 돼선 안 되는 이유가 아니다. 본인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유권자에게 설득하는 일뿐이다. 투표소 앞에서 주저하는 이들을 돌려세울 힘은 후보들에게 있다.

심희정 경제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