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책이 발달했다고 알려진 영국은 세금으로 문화 부문을 지원할 때 어느 분야를 지원할지, 그 안에서도 엘리트와 대중적 아티스트 중 누구를 먼저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거세고 뜨거웠다. 상류층이 향유하는 가운데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기 바랐던 오페라나 발레 대신 대중이 즐기는 뮤지컬이나 팝 음악을 위한 공간과 예술가를 더 지원하라고 했던 오래된 논쟁이 대표적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구입하는 복권 기금으로 왜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문화 예술가를 지원하냐는 비판도 컸다.
우리는 정부가 문화 부문을 지원할 때 선정 과정이 공정했는지에는 매우 예민하지만 어느 분야의 누구를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 가끔 저 분야는 왜 세금으로 지원하는지 궁금할 때도 있는데, 우리는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할 때 그 장르가 우리 사회에 가치 있거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거라고 믿거나, 아니면 문화예술인을 취약계층으로 보고 보조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람과 현실엔 차이가 있어서 궁중음식을 알리고 싶은데 짜파구리가 화제가 되고 폭력적인 만화와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곤 한다. 패션 분야에서도 기대하는 하이엔드 디자이너 소식은 더딘데 스트리트 브랜드는 폭발적인 인기로 K패션을 대표한다. 또 고급 한복은 위상이 줄고 있는데 언뜻 해괴해 보이는 디자인은 인기다.
이런 양상이 보일 때마다 문화예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항상 따른다. 하지만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에 더 기대가 간다. 불모지 장르에서도 걸출한 아티스트가 종종 등장하지만 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의 관심은 필수적이다. 동서고금으로 무관심한 대중을 향유층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보통 실패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장르에서 새로움도 명작도 등장할 거라고 믿지만, 일단은 인기가 있고 볼 일이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