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훌륭한 경제대통령 첫걸음은 규제 간소화·투명화

입력 2022-02-28 04:06

다음 주에는 우리나라의 20대 대통령이 결정된다. 그날 대통령으로 선출된 분은 대단히 기쁠 것이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본다. 마냥 기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20만명에 육박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긴박한 국제 정세가 언제 어디로 튈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무리 선거 구호라지만 대통령 후보자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주장을 당선된 뒤에도 그대로 했다간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외교는 상대가 있고, 더구나 우리의 상대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초강대국들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세상은 이것을 약소국의 운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운명을 이겨내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다. 그 결과 이제는 경제에서만큼은 누구도 우리를 얕보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신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라고 답했다. 이것만 담보된다면 대통령이 어떤 뻘짓을 해도 그냥 다 용서하겠다는 마음이다. 신임 대통령이 경제 강국을 향한 국민의 이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대략 100일 안에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본다.

문제는 경제이고, 경제는 민간에 달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다. 경제 발전을 먼저 이룩하고 그 위에 강력한 군사·외교력을 세우는 부국강병을 추진했고 이제는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을 볼 때마다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고, “문제는 경제”라며 경제 성장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상황은 날이 갈수록 팍팍하게만 느껴진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할 때마다 경제 발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지만 말대로 된 적은 없었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기업 투자가 엄청나게 늘 거라던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들의 외면 속에 스스로 삽을 들고 4대강의 바닥을 팠고, 일자리가 최우선이라던 현직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공무원을 뽑는 방식으로 실업률을 방어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도하면 할수록 경제가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민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경제 강국은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가 바탕이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차세대 우선권을 선점하려는 기술혁신 경쟁의 시대이고, 이 경쟁은 누가 뭐래도 창의적인 민간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은 심판

뉴시스

그렇다고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경제를 시장에 일임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피해는 너무 심각하다. 시장 원리를 빌미로 한 독점 기업의 횡포가 대표적이다. 이로 말미암아 불평등이 악화되고, 나아가서는 정치사회적으로 포퓰리즘이 만연해져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유컨대 운동 경기의 심판처럼 규칙을 만들고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실제 경기는 감독과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최종 평가는 관중이 한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편파 판정이 횡행한 종목은 전 세계인의 외면을 받았던 사실을 보더라도 심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이나 시장이 주체가 돼야 하고, 주어진 규칙 하에서 공정한 경쟁으로 성공 여부가 결정돼야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간결하고도 공감받을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이것이 잘 지켜지는지를 감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공무원에 기댈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훌륭한 경제대통령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민간이 경제 주체라는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당연히 규제의 간소화·투명화가 될 것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다. 규제 전봇대는 손톱 밑의 가시로 모습을 바꿔가며 여전히 민간을 조롱하고 있다.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통령과 함께 공무원이 지목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 완화를 외쳐도 공무원이 외면하면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말했듯이 공무원의 수는 공무원 업무의 양과는 관계없이 늘어간다(파킨슨의 법칙). 달리 말하면 공무원 수가 늘어난 만큼 공무원의 업무량은 증가한다는 말인데, 여기서 늘어난 업무는 주로 민간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다. 국민경제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취임 초기에는 공무원의 ‘군기’를 잡으며 규제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는데, 공무원이 없으면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공무원 공화국으로 돌아가고 규제는 다시 늘어난다.

좋은 경제대통령은 100일 안에 판가름

혹시 후보들의 공약을 토대로 투자를 결정하려고 생각했던 분들은 앞으로 한 100일을 지켜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예를 들어 이 기간에 공무원 사회를 개혁하는 조치를 실행에 옮긴다면 좋은 경제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그럴듯한 이야기와 함께 구체적인 실행이 미뤄지는 경우라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5년 만기 장기 투자는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국가경제를 진정으로 혁신하겠다면 당연히 공무원을 포함한 대통령 자신부터 개혁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핑계는 이제껏 너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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