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국과 유럽 각국이 파병 대신 경제제재를 택하면서 ‘경제 냉전’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러시아의 압도적 군사력에 전쟁은 조만간 끝나겠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국제 분업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만큼 한동안 글로벌 경제에 충격이 이어지고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결코 비켜갈 수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발표한 대 러시아 포괄적 제재 방안은 우리나라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미국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러시아 제재에 적용키로 해 당장 반도체, 자동차, 가전제품 등 우리 주력 상품의 러시아 수출이 중단된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러시아에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철수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기업만 문제가 아니다. 원유, 천연가스, 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크게 올라 인플레이션 걱정은 더 커졌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이미 서울의 휘발유 값은 ℓ당 1800원을 넘었다.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로서는 부담이 크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제재에서 러시아의 돈줄인 에너지 부문을 배제했고, 국제은행 결제망 퇴출 조치도 보류했다. 경제에 미칠 최악의 충격을 고려한 것이지만, 언제 더 강한 제재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시장에 남았다. 주식의 가격 변동성이 높아졌고, 금융 시장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심어졌다.
정부는 시장이 흔들리거나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수출입 피해 기업에 긴급 금융 지원을 신속하게 발표하고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 망 점검에 착수한 것은 적절한 대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이미 빨간불이 켜진 물가는 곡물·에너지 수급 불안과 원화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고가 더해지면 통제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주로 수입하는 희귀 광물이 산업계 전반에 타격을 주는 경우는 없는지 살피는 등 놓치기 쉬운 미세한 곳까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러 경제제재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러시아와의 교류 비중이 크지 않다고 낙관하지 말고 글로벌 경제 질서가 달라지는 근본적인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