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김치의 수모

입력 2022-02-26 04:10

민족 별로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한다. 서양인은 양고기 냄새, 아프리카인은 빙초산 냄새, 그리고 한국인에겐 시큼한 김치 냄새가 난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김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과거엔 유학생들이나 교포가 김치 냄새로 괄시 당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김치에 대한 세계의 시선은 확 바뀌었다. 2002~2003년 창궐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예방에 김치의 유산균이 특효라는 소문이 돌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7% 증가한 1억5992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였다. 지난 9일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 이어 17일 뉴욕주 의회도 ‘김치의 날’ 제정을 결의하기도 했다.

중국이 김치를 중국식 채소 절임인 ‘파오차이’의 일종이라 주장하고, 지난해 알몸 김치 파동을 일으켰을 때 많은 이가 분노했다. 우리 고유의 식문화, 삶의 일부분을 건드렸다고 봤기 때문이다. 비위생적인 알몸 김치 제조 공정을 본 뒤 혐중 감정은 더욱 커졌다. 유튜브 채널 푸드스토리가 지난해 5월에 올린 ‘역대급 위생 김치 공장 대량 생산 현장’ 영상은 25일 기준 조회수 1755만회를 넘었다. 중국 김치와 차원이 다르다는 반응, 뿌듯함이 압도적이다.

최근 터진 ‘썩은 김치’ 파동은 김치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김치 전문업체의 공장에서 썩은 배추잎과 곰팡이가 가득한 무로 김치를 만들고 있었다. 더욱이 그 업체는 우리나라 최초의 김치 명인인 김순자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김치의 70%는 28개국에 수출된다. 김치 이미지뿐 아니라 한국 위상도 훼손할 만한 사건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때다 하고 한국 김치를 조롱하고 나섰다. 김씨는 지난해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먹길 바라는 게 염치없는 일이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와 함께 김씨의 명인 자격도 박탈해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