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등에선 도시를 탈출하려는 차량으로 도로가 수십㎞ 마비될 정도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실제 전쟁이 닥치자 당황한 시민들이 식료품점과 현금인출기 등으로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새벽부터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시작된 키예프에선 시민들이 공포 속에 서둘러 짐을 꾸리고 자동차나 기차로 대피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동, 북, 남쪽 3면에서 공세를 펴는 러시아군의 침공을 피해 서부로 피란을 떠나려는 인파가 몰리며 주요 도로가 교통 체증으로 마비됐다. 실제 우크라이나 서부 중심 도시이자 각국 대사관이 대피한 리비우로 향하는 주요 4차선 도로에서는 밀려든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수십㎞까지 늘어질 정도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뒷좌석에 세 살 된 딸을 태운 채 교통 체증으로 발이 묶인 한 시민은 “일단 키예프를 탈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전쟁이 시작됐으니 떠난다. 공습이 두렵다”고 전했다.
비행기편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유럽항공안전청(EASA)은 민간 항공사에 우크라이나 인근 상공을 피해서 운항하라고 권고했다. 공항을 찾은 한 시민은 로이터통신에 “오늘 키예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가려고 했는데 전쟁이 격화돼 비행편이 전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은행 현금인출기 앞에는 대피에 앞서 현금을 챙기려는 이들로 길게 줄이 늘어섰다. 식료품점에는 식량과 생필품이 금세 동이 났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면서 이로 인한 난민이 최대 50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전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이것이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위기가 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전쟁을 선택하면 난민 500만명 이상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러시아의 행동은 식량 가격 폭등을 유발해 리비아와 예멘, 레바논 등지에서 더 심각한 기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주변국들은 대규모 난민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난민 수용소를 마련하는 등 대비에 들어갔다. 폴란드는 중북부 마조프셰주 치에하누프에 난민 수용소를 설치를 검토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군사적인 침공이 진행되는 것에 때맞춰 사이버 공격까지 잇달아 발생하면서 더 깊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공격을 개시한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와 주요 은행의 웹사이트가 정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날에도 의회, 외무부, 국방부 등의 국가기관과 은행, 기간산업 시설, 교육기관 등의 웹사이트가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을 받아 다운됐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