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은 이번 주일(27일)을 주현절 후 마지막 주일이자 산상변모주일로 정하고 있다. 누가복음 9장에 따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예수의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하얘지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영광 중에 세 분이 대화를 나눴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3월 2일)을 바로 앞두고 영광스럽게 변한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40일에 걸쳐 예수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데, 고난 후에 올 영광을 미리 맛봄으로써 소망과 새 힘을 얻게 된다. 변화산에서 보여진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부활의 영광과 장차 온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오실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산상은 신적인 통치가 구현된 천국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천국에 온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서 그랬는지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으니 세 분을 위해 초막을 지어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대부분의 신자들도 천국 경험을 하면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믿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것을 소망하지만 살아 있을 때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라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많은 사람이 현실의 삶에 만족을 못 느끼고 딴 세상, 다음 생애로 가서 좀 잘 살아보려는 기대를 품으며 천국을 소망한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지금 여기를 제외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베드로는 산 아래의 현실을 잊고 산 위에서 달콤한 꿈과 같은 세계에 계속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셨다.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천국이 언제 오느냐 묻지 말라고 하시고,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고,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선포한 첫 번째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있다”였다. 천국에 관한 새로운 이해는 예수 가르침의 핵심이다. 천국을 받아들이고 누리기 위한 조건은 회개다. 회개는 그리스 원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변화, 초월, 다음, 위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 접두사 메타(meta)와 마음,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noos)에서 파생된 노이아가 합쳐서 생긴 말이다. 문자적 뜻은 “마음의 변화”가 되겠지만 성경은 회개라고 번역했다. 천국은 어느 곳에 있어서, 어떤 때에 와서 그 시공간으로 이동해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변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체험하게 되는 세계다. 토머스 모어도 이상향을 다룬 그의 책 제목을 유토피아로 정해서 좋은 곳(eu-topia)과 없는 곳(ou-topia)으로 해석할 여지를 둠으로써 이상향은 장소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세계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일부 종교인뿐 아니고 일반인에게도 흔한 일이다. 최근 메타버스에 관한 지나친 기대가 한 예이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마치 메타버스를 통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도리어 메타버스 안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지배력이 극대화돼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의 삶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