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4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0년만에 3%대로 올려 잡았다. 지난해 8월에 이어 11월과 올 1월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행진은 일단 멈췄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세에 있고, 일촉측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불확실해진 경기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현재 연 1.25% 수준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11월에 발표했던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에서 3.1%로 1.1%포인트나 높여 잡았다. 한은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대로 전망한 것은 2012년 4월 3.2%(2012년 상승률 전망치) 이후 약 10년 만이다.
불과 3개월만에 올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1.1%포인트나 높여잡은 것은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불안해진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물가 움직임에 상승 압력을 넣는 주요 요인에 대해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물가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처럼 한은이 물가 전망치를 크게 올리면서도 금리를 동결하는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한 것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우크라 사태가 물가도 올리는 동시에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는 ‘양날의 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그간 세 차례에 걸쳐 선제적으로 금리를 조정해 온 만큼 지금 시점에서는 주요국의 통화정책 방향,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여건의 변화와 그것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금리 숨고르기에 들어간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다 아무리 물가 상승 압력이 높더라도 대외 불확실성을 무시하면서까지 3차례 연속 인상을 단행하기에는 무리수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급격한 기준금리 상승은 최근 이미 많이 오른 시장금리를 더 자극하고, 대출이자 인상으로 이어져 일반 가계나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키울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금통위는 안개가 걷히면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가 1.5%로 오르더라도 여전히 완화적인 상황이고 시장이 올해말까지 예상하는 1.7~2.0% 수준도 합리적이며 한은이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 완화정도 지속조정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금통위 다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대내외 여건 변화가 국내 이어지는 경기흐름을 크게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도 추가 인상 가능성에 여지를 남겼다. 한은이 물가와는 달리 올해 성장률 전망치의 경우 3.0%로 유지한 것도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견조한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