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와인을 꼽는 사람도 많다. 서양의 역사는 와인과 함께한다. 로마인들은 물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셨다고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에도 와인이 등장한다.
장계향이 쓴 옛 요리책 ‘음식디미방’은 음식 조리법 등 164가지 항목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51개 항목이 술이라고 한다. 조선 정조의 술버릇은 유명하다. 신하가 취하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았다 하니 정조의 주사는 요즘으로 치면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 분명하다.
책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학자들에 따르면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책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파피루스, 대나무, 너도밤나무껍질처럼 식물을 이용한 책도 있었다. 책을 뜻하는 영어 ‘북’은 너도밤나무 ‘boc’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책이 만들어지면서 지식과 정보는 기록돼 저장되고, 후대로 전해질 수 있게 됐다. 인류문명 발전의 핵심이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래서 진시황의 악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분서갱유’다.
스마트폰은 정보의 바다로 불린다. 폰의 역사는 짧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이 1876년, 지금의 스마트폰 역사는 불과 1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폰이 인류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책과 술은 비할 바가 안 된다. 손바닥만 한 폰 하나에 온 세계가 있다. 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 1년이 멀다 하고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폰이 쏟아져 나오니 어디까지 진화할지가 궁금하다.
책, 잔, 폰.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세 가지다. 이 지사는 “지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알기 위해서는 잔을 자주 맞대야 하며, 소통을 위해서는 폰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 지사는 추진력과 판단력을 겸비한 ‘소통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한다. 그의 리더십과 지략은 광역단체장으로는 아까울 정도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3선 의원을 거쳐 도백까지 오른 이 지사의 메시지는 분명 울림이 있다.
문제는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느냐다. 메시지가 왜곡되면 오작동을 일으킨다. 최근 경북도 공직자들 사이에 이런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다. 술자리 무용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애교다. 도청 신도시에서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도청 공무원이라는 말이 있다. 술자리에 젊은 여성 공무원을 불러낸다는 소문도 있다. 반면 늦은 밤까지 문서를 만들며 업무를 챙기는 공직자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도지사가 몸으로 뛰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 퍼졌기 때문 아닐까. 분명 도지사의 메시지가 오작동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음주문화에 관대하다. 술 잘 마시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술 마시고 벌어진 실수는 웬만하면 눈감아 준다. ‘사람은 괜찮은데 술이 문제’라는 것인데 과연 타당한 인식인가. 술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이 경감돼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한다. 술이 주는 미덕이 없지는 않다. 적당한 술은 약주다. 그러나 지나치면 독주가 된다. 책은 멀리하고 잔과 폰에 승부를 걸려는 공직자가 많아지면 조직의 건강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업무가 우선이고 스킨십은 보조수단이어야 한다. 책이 먼저고 잔은 후순위다. 도지사의 메시지 점검이 필요한 때다.
김재산 사회2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