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한 버추얼 리얼리티 비디오 프로그램을 앞에 두고
몇 사람이 앉아 있다고 하자. 곧 그들은 그 비디오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라 해도 좋고,
한 가치관, 한 국가의 여러 분파들이라 해도 좋고,
서로 다른 국가들, 서로 다른 행성들이라 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은 그 비디오 프로그램 안으로 입성한다.
그들은 거의 설정된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정황들 속으로 들어가 신나는 모험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모험이 계속될수록, 테이프가 시간을 따라 흘러갈수록,
그들은 자기들이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잊어버렸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그들의 의식은
어느새 잠들어버렸다. 이제 비디오 안의
모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건들은 그들에게 적대적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때로는 서로 협력하면서
때로는 싸우면서, 그 모든 위협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바깥에 안전하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한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두 번째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세 번째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
-최승자 시집 ‘연인들’ 중
새로 복간된 최승자 시집에서 발견한 시.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발표된 것이지만 온라인 세계를 또 하나의 현실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제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