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구가 증가하면서 개·고양이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동물복지 관점에서 인도적 조치를 바라는 여론이 만들어 낸 사회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중성화 사업’이란 명목으로 수술을 통해 번식을 제한하는 화학적 거세 사업이 시행 중이다. 지난해까지 길고양이만을 대상으로 하던 이 사업은 올해부터 마당에서 키우는 실외견으로도 확대됐다. 언뜻 보면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 변화와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인간은 인도적 조치와 잔인한 결정을 동시에 하는 걸까.
무책임, 중성화 사업을 낳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원인은 일부 몰지각한 반려인에게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2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려가구 수는 606만 가구로 추산된다. 2010년(335만 가구)과 비교해 11년 사이 80.9%나 늘었다. 양육하는 동물 수는 742만여 마리로 파악된다. 대부분이 개와 고양이다. 이들이 양육을 잘한다면 다행이지만 매년 유실 또는 유기되는 개·고양이가 너무 많다. 2017년을 기점으로 연간 유실·유기되는 동물 수는 10만 마리를 넘어섰다. 가장 최근 집계인 2020년 기준으로 13만401마리가 바깥에 내버려졌다.
이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인간의 손을 떠나 야생화한 길고양이들을 둘러싼 민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 ‘길고양이 서식 현황 모니터링 및 적정관리방안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2.3%가 고양이 울음소리와 같은 소음을 문제로 꼽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두 번째로 응답자가 많았던 항목이다. 복수응답 결과 응답자 중 76.9%는 ‘개체 수 증가’ 역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야생에서 번식을 통해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현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회적 갈등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 응답자 중 길고양이 관련 갈등을 겪고 있다는 응답자는 20.0%에 불과했다. 캣맘의 등장처럼 길고양이를 돕는 데 대해 긍정적 인식이 있는 이들이 꽤 된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길고양이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만큼 정책적 조치도 불가피해졌다. 정부가 2018년부터 예산을 들여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말까지 누적 22만8500마리를 중성화할 계획이다.
안타깝지만, 살처분보단 나아
해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보고되고 있다. 미국이나 호주 일부에서도 한국처럼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실시 중이다. 이유는 한국과 비슷하다. 길고양이가 사회 문제화한 탓이다.
중성화 사업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입증되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센트럴 플로리다대학은 5.7㎢ 규모인 캠퍼스 내에서 주기적으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시행했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캠퍼스 내 155마리의 고양이가 화학적 거세됐다. 중간중간 입양되는 길고양이까지 있어 개체 수가 급감했다. 당시 대학 내 조사 결과를 보면 1995년 이후 캠퍼스 내에서 새끼 고양이가 확인된 적이 없다. 광범위한 지역이더라도 효과가 나타난다. 2007년 미국 시카고 홈볼트공원에서 10년간 195마리의 길고양이를 수술했다. 시민과학자 바네사 스메코우스키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 조치의 영향으로 2010~2015년 동물보호소 내 고양이 입소량이 26.0% 감소했다.
보기 싫다고 살처분하면 개체 수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점도 중성화 사업 효과에 힘을 보탰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지역의 경우 포획 및 살처분을 통해 길고양이 감소를 시도했었다. 그 결과 개체 수가 오히려 더 늘었다. 연구원들이 야생동물 카메라를 통해 길고양이 수를 추적한 결과 지역에 따라 75~211%나 개체 수가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터줏대감을 살처분하니 타 지역에서 길고양이가 유입되고, 살아남은 개체들이 더 많이 번식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제는 실외견도 대상
정부는 또 다른 실험에도 나섰다. 이번에는 개다. 마당에서 키우는 실외견을 대상으로 중성화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 예산 15억원을 편성해 1만8750마리를 중성화하기로 했다. 길고양이와 다른 점은 몸 안에 인식칩을 넣는 예산을 함께 편성했다는 점이다. 중성화 수술비에 인식칩 비용 4만원을 더해 수컷은 20만원, 암컷은 40만원을 지원한다.
들개도 아닌 실외견을 중성화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유기·유실 방지와 연관이 있다. 2020년 유실·유기된 반려동물(13만401마리) 중 73.0%인 9만5261마리가 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혈통이 명확하지 않은 잡종견이라는 점이다. 같은 해 기준 잡종견 비율은 73.1%로 집계됐다. 실외견과 들개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태어나는 강아지들이 들개화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실외견은 반려동물이란 인식이 낮고 관리가 안 되다 보니 태어나는 강아지가 유기견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필요성에는 공감해도 인도적 측면에서 이런 사업이 필요없어 지도록 반려인들이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간의 무책임이 동물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조 대표는 “중성화 자체는 안타깝지만 태어나서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