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지능’ 신진서 9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국팀 최종주자로 뒤가 없는 상황에서 전날 발생한 해프닝으로 같은 상대와 재대국까지 펼쳤지만 흔들림 없는 승리로 역전 우승의 초석을 다졌다.
한국 주장이자 최종주자인 신 9단은 23일 서울과 베이징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2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라운드 제11국에서 중국 4번 주자 미위팅 9단에게 214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상대 전적에서 7승 3패로 우위를 지킨 신 9단은 특히 중국 기사 상대 공식 대국 22연승을 달리며 확실한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9단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최선을 다했고, 시간 여유가 있어 마지막까지 우세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겨우 한 판 이긴 것이라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일본 2명, 중국 1명의 선수가 남은 만큼 마지막까지 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전날 미 9단의 착수 오류로 ‘시간패 논란’이 불거진 뒤 열린 재대국에서 신 9단은 초반부터 안정적인 반면 운영을 펼쳤다. 첫 대결에서 초반 난전으로 불리하게 출발했다가 맹추격을 보였던 것과 달리 포석 중심의 속기로 중반까지 차분한 대국이 이어졌다. 신 9단은 중반을 넘어서며 우상귀 전투에서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었고 미 9단이 중앙으로 나오며 반격을 꾀했지만 오히려 패착이 됐다. 신 9단은 중앙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우변 흑돌을 잡아내며 승기를 잡았다.
이날 승리로 신 9단은 일본 대표 위정치 8단과 24일 제12국을 펼친다. 두 기사가 공식 대국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공식 세계랭킹 1위로 평가받는 신 9단이 전력상 앞선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농심배는 3국에서 5명이 출전해 승자가 계속 대국을 펼치고 패자가 탈락하는 연승전 방식이다. 우승 상금은 5억원이며 우승상금과 별도로 본선에서 3연승하면 1000만원의 연승 상금이 주어지며, 이후 1승을 추가할 때마다 1000만원이 별도로 지급된다.
이번 대회 한국은 원성진 박정환 변상일 신민준 9단이 조기 탈락하면서 신 9단 혼자 중국 2명, 일본 2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승리로 중국 역시 커제 9단만 남았고 신 9단이 위 8단을 넘는다면 한·중·일 모두 최종 주자만 남겨놓게 된다. 한국은 신 9단이 일본 마지막 주자인 이치리키 료 9단까지 3판을 더 이겨야 우승할 수 있다. 신 9단은 지난해에도 막판 5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을 안겼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