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는 한 뿌리’ 인식, 친서방 나토 편입 불용 의지

입력 2022-02-24 04:03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0㎞ 떨어진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에 21일(현지시간) 군 병력과 장비들이 새로 배치돼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평화 유지 명목으로 군대를 파병하기로 한 러시아가 접경지역에서 병력을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있는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이곳에 군을 진입시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이처럼 집착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움직임이다. 모스크바로부터 거리로 70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우크라이나에 미국과 서방 연합 나토군이 진주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직접 안보 위협에 직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스크바와 멀지 않은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의 나토 가입을 ‘방치’했던 그가 유독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내재해 있다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와 역사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역사적·인종적·문화적 동일성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주민들이 기차로 피난을 떠나 러시아 로스토프에 도착한 모습. TASS연합뉴스

러시아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한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니콜라이 고골 등의 문학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이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심지어 옛 소련 시절 제4대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역시 우크라이나인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10세기쯤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세워진 키예프공국을 같은 뿌리로 탄생했다.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공국이 멸망하자 슬라브족은 지금의 모스크바로 이동해 모스크바공국을 세웠고 서북쪽으로 이동한 슬라브족은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

푸틴은 지난해 7월 이 같은 역사를 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역사적 통일성에 대하여’란 논문까지 발표했을 정도였다. 우크라이나어는 언어학적으로 러시아어의 남쪽 사투리에 불과하다는 인식, 인종적으로도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게 논문의 요지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친서방 나토 가입국에 편입된다는 것은 조국 러시아의 분할과 다름없는 일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인식에 대다수 러시아 국민도 동의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수백년 동안 지속됐던 러시아의 탄압 역사에 치를 떤다. 러시아 제국 시절 용병에 불과했던 코사크 기병대는 러시아 공산 혁명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차르(러시아 황제)에 의해 이용되다 ‘붉은 군대’에 몰살됐다.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선 이쪽저쪽으로 분할되고 식민지화되는 신세였다.

나토 동진 vs 푸틴 ‘대(大)슬라브주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2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회담 후 미·러 외교장관회담을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하는 장면.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짧게는 2014년 ‘민스크협정’, 길게는 1990년 통독 이후 탄생한 미·소 불가침협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소 불가침협정은 통일된 독일의 나토 가입을 옛 소련이 허락하는 대신, 미국과 서방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이 민주화된다 해도 나토의 동유럽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서방은 이후 “주권국가의 자주적 결정”이라는 이유로 이들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을 받아들였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소련 소속이었던 발트 3국까지 나토 회원국으로 만들었다. 지금 동유럽의 옛 소련 위성국가 중 나토 회원국이 아닌 나라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핵심이던 세르비아와 바로 위의 우크라이나밖에 남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91년 소련 해체에 따라 독립국이 됐다. 미국과 서방은 2004년에는 발트 3국을 나토 회원국으로 들였고, 4년 후인 2008년에는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과거 소련의 영광을 되찾는 것’을 넘어 ‘슬라브족은 함께’라는 대슬라브주의 역사 인식을 가진 푸틴 대통령의 눈에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를 다른 나라가 아닌 러시아의 일부로 여기는 그로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적대 행위’나 다름없던 일인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각종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인식을 드러내 왔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반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내전이 벌어지자 미국·서방과 러시아는 민스크협정을 맺었다. 양측 사이에 중립지대를 설치하고 정전에 돌입하며 러시아와 나토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민스크협정은 휴지조각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도 나토의 동진에 대한 위기감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내부 친서방 대 친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래 줄곧 나토 가입 문제를 놓고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쪽 지역은 친서방, 러시아인이 다수인 동쪽 지역은 친러시아로 갈라져 대립이 이어졌다.

나토 가입 문제는 가장 첨예한 갈등 접점이었다. 2010년 집권한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전 정부의 친서방 정책 기조를 뒤집고 나토 가입 반대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국민은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고 결국 야누코비치 정부를 몰아내고 친서방 정권을 탄생시켰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움직임은 이때부터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 같은 역사·문화적 배경에 현실적인 문제 등으로 푸틴 대통령이 끝까지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