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넷 뒤의 귀한 늦둥이 막내인 남편과 결혼을 하여 90세에 가까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끔찍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부모님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소원은 손자였지만, 결혼 4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여 평소 넷 정도 낳겠다고 생각한 내 마음은 더욱 초조하고 간절해졌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 아이가 없으면 그냥 우리끼리 살면 되잖아!” 남편의 말도 한쪽 귀로 흘리고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여러 차례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매번 실패하자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이 없이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 8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소망하던 아기를 주셨고, 같은 방법으로 다음 해에 둘째도 태어나며 시부모님의 평생소원을 풀었다.
갓난아이 둘을 키우느라 밤잠을 설치고 몸은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그런데 힘들게 얻은 첫째가 5살이 되며 아토피가 갑자기 심해졌다. 팔다리의 접히는 부분이 갈라져 피와 진물이 나고, 배와 등에 심한 발진으로 쉼 없이 긁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손톱 밑엔 시커먼 피딱지가 앉고 저녁때엔 옷에 피가 얼룩진 모습을 보면 가슴이 무너졌다. 팔과 다리 전체를 붕대로 감아 어린이 집에 보내도 붕대를 풀거나 손가락을 넣어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 치료 받을 길을 열어주세요.” 교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남편과 치료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민간요법부터 자연치료, TV에 출연한 한의사와 대학병원 명의까지 찾아다니며 인터넷 검색으로 좋다는 약을 가격과 관계없이 투자했지만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방치료로 완벽하게 나은 분을 보고 비싼 돈을 주고 3개월간의 치료에 들어갔다. 치료는 너무 끔찍했다. 온 몸에 약을 뿌리면 아이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아파트 전체에 울려 이웃 분들이 아동학대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온 몸은 큰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힘들게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아토피 괴물’이라 놀렸다. “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선물이야. 네가 더욱 씩씩해지라고 이 고난을 주시는 거지.”하며 계속 말씀으로 위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예수님을 보내 주셨어.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셨어. 우리 아들의 주인은 누구지?”하면 아이는 기쁘게 “예수님”이라고 대답했다. 휴직까지 하고 본격적 치료를 위해 나섰지만, 아토피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 잠을 자려고 하면 파리가 자꾸 달라붙어서 잘 수가 없어!” 하며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는 충격적인 말도 했다. 교회의 모든 분들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들지만 참고 이기라는 위로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싸움이 이어졌지만, 내게 이 아이를 맡기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새 힘을 얻었다.
문득, 너무 힘들게 살아온 내 삶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광부였던 아버지가 재혼을 했지만 삶은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동생 공부를 위해 취업을 하라고 했지만 몰래 교육대학교에 원서를 넣어 합격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결혼 후엔 어르신들을 모시며 아이를 갖기 위해 힘들게 병원을 오갔고, 모처럼 얻은 아이의 아토피로 고생하며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삶이었지만, 내가 아이를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능자의 큰 사랑을 생각하며 날마다 주님께 굴복했다. 또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주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교회공동체의 생명을 건 기도의 응답으로, 아이에게 잘 맞는 약을 찾아 아토피는 서서히 사라지며 짜증으로 가득했던 얼굴은 밝고 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홈스쿨링까지 생각했는데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초등학교부터 잘 적응하더니 이젠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외출도 잘 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새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멋을 부리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전도도 열심히 하며 복음의 사명자로서 꿈을 키워갔다.
그런데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가로막는 것처럼,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아 행동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미가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느냐, 그들은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잡고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긴다. 혹 잘못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날마다 기도하며 부활하여 나의 주인 되어 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말씀을 들려주며 품어준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삶은 없다. 수많은 문제가 갖가지 모양으로 믿음을 위협하지만, 주인 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자녀, 질병, 경제, 인간관계, 죽음까지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깨든지 자든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사랑의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김정화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