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내려간 문태준(52) 시인이 묶은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나란히 출간된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와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는 서로 연결돼 있다. 산문집은 시집에 대한 주석처럼 보인다. 산문집은 자연스레 시집으로 이끌고, 시집을 읽고 나면 산문집도 읽고 싶어진다.
‘아침은 생각한다’는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을 들어온 문태준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202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거처를 옮긴 후 쓴 시들이 대부분이다. 산문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구분해 묶었다. 그는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 와 살면서 새로운 마음을 얻었다”고 했는데, 자연과 계절에 대한 신선한 감각이 가득하다.
두 책은 형식적으로는 시와 산문으로 구분되지만 내용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문태준의 글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멈춰 세우는 힘을 갖고 있다. 느리고 고요한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속을 거닐다 보면 속도를 조금 늦추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된다.
시집 맨 처음에 실린 ‘꽃’이라는 시는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꽃봉오리’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산문집에선 더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빠르게 지나치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우리는 멈추거나 느리게 걷는 순간에 만나게 된다. 바쁜 생활의 책갈피 속에 꽂혀 있는 기쁨과 고요함과 너그러움을 수시로 발견하면서 살 것….”
문태준의 글에는 ‘나’라는 주체가 흐릿하다. ‘나’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과잉의 시대, 표현의 시대에 문태준의 글이 갖는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산문집에는 “실로 우리가 경청해야 할 대상은 무궁무진한 것일 테다”라거나 “나는 글씨들이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듣는다’와 ‘기다린다’는 문태준 작법의 핵심으로 보인다.
문태준은 꽃을 보고 항아리를 보고 풍경과 계절을 보면서, 종소리를 듣고 방울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가는 통로를 만든다. 그것들이 마음속에서 일으키는 움직임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그것들이 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아낌없이 감탄하면서 문장을 기다린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구절이 산문집에 나온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으면 꽃은 어떻게 저 고운 빛깔과 향기를 제 몸속에 갖추고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이내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우리도 하나의 꽃나무요,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도 각양각색의 꽃과 향기가 들어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가만히 보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만히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다. 문태준은 “요즘의 우리에게 바깥 풍경에 대한 조용한 응시의 시간이 과연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복잡한 마음을, 조급한 마음을 좀 쉬게도 해야 한다”며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불멍’과도 같이, 어떤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로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태준 글은 온순하고 소박하다. 식물성과 아날로그의 글이다. 고아함과 종교성도 확인하게 된다. ‘버들잎 같은 입’ ‘목깃이 까매진 나의 저녁’ ‘시든 풀 같은 잠’ ‘공손한 말씨의 봄비’ 등 순하면서도 탁월한 비유들을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문태준을 읽는 즐거움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