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비리 의혹 녹취록의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고함을 주장했다.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의혹을 직접 해명한 것은 전례가 없다. 그만큼 억울하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조 대법관은 무능한 검찰과 정략적 발언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법관이라도 억울하다는 말만으로 모든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 법원은 객관적인 검증 결과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조 대법관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리라 생각했는데 생중계 되는 TV토론에서 거론됐다”며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립하는 사법부인데, 불신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고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전국 3000여 법관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도 언급했다. 사실 조 대법관이 ‘그분’으로 거론된 과정은 논리적이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뇌물을 뿌려 수천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의 녹취록 일부를 근거로 한 언론이 ‘그분은 현직 대법관’이라고 보도했고, 이후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 등이 SNS에 조 대법관을 거론하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TV토론에서 말한 것이다.
정치권이 ‘그분’에 집착한 이유는 상대 후보를 비리의 주범으로 몰아세우기 위해서다. 조 대법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표를 얻기 위해 범죄자의 말에 상황 논리와 추론을 얹어 사법부 존립을 위협한 게 된다. 하지만 국민의 사법부 불신은 정치인의 말 몇 마디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대법관 이름이 연이어 거론되는데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외면하는 등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법원의 무책임한 태도가 깔려 있다. 조 대법관이 말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법원이 직접 나서 의혹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