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 후보, 과거 아닌 미래를 말하라

입력 2022-02-24 04:01
선진국 됐지만 여전히 각종 위기 직면
대선은 한국호 방향타 조정할 기회
과거 말고 미래비전으로 경쟁해야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지난해 한국에 선진국 지위를 부여했다. 세계 6위 무역 국가, 세계 10위 경제 규모, 국민소득 3만 달러 등 한국이 선진국임을 말해주는 지표는 차고 넘쳤다. 국제사회가 이를 공인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추격의 시간을 보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섰고, 산업화·민주화의 진통을 겪었으며, 앞선 나라들을 모델 삼아 끊임없이 개혁해왔다. 마침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일한 사례가 됐고, 우리는 공식적인 선진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목표했던 곳에 도달한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당장의 코로나 위기, 고용 위기, 양극화 위기부터 인구 위기, 기후 위기, 안보 위기 같은 닥쳐올 위기까지 나열하자면 숨이 가쁘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벌써 높은 파도가 되어 경제와 일상의 모든 영역을 뒤흔드는 중이다. SF영화 소재였던 우주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현실이 돼갈 만큼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불과 5년, 10년 뒤를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숱한 위기와 거센 변화 속에서 한국은 이제 무엇을 목표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대선이 열린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경직된 권력 구조에서 이 선거는 한국호의 방향타를 큰 틀에서 조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 무대에서 미래를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공약은 홍수를 이루지만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후보자는 거의 없다. 후보들은 매일같이 정책을 쏟아내는데, 이것저것 퍼주겠다는 약속이 대부분이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여당 후보가 꺼낸 “정치 교체”나 야당 후보가 외친 “정권 교체”는 모두 과거에 묶여 있다. 잘못됐으니 바꾸자고 할 뿐, 바꾼 이후의 미래를 그려주지 못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큰 정부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두루뭉술한 그림이 그나마 있었는데, 표를 쫓아다니면서 그마저 흐릿해졌다. 이 후보는 표가 안 될 것 같으니 기본소득 공약을 뒷전에 물렸고, 표를 얻으려 이것저것 약속하다 보니 ‘윤석열정부’도 큰 정부가 될 판이다.

미래 담론의 부재는 한국 사회의 분열에서 상당 부분 기인했다. 문재인정부 5년을 지나며 보수·진보의 진영 대립은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상대 진영을 꺾는 것, 내 진영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미래비전은 뒷전에 밀렸다. 진영에 갇혀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도,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도 없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국 사회가 나아갈 지향점이 보일 것이다. 네거티브 싸움은 할 만큼 했다. 후보들은 이제라도 미래를 말하라. 조용한 다수의 유권자는 그것을 보고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