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각하. 성직자가 군에 들어와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가슴을 신앙의 철판으로 무장시키고 기도로 죽음의 두려움을 없게 하여 주옵소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미군 제30사단 10공병대대에서 근무하던 한 카투사 사병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 일부다. 이 한 장의 편지는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군종제도가 탄생하는 데 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종제도는 군으로서는 신앙 전력화를 통한 강군 육성, 교계로서는 기독청년들을 사회로 재파송하는 ‘물댄동산’의 역할을 하면서 군선교의 중심이 됐다. 현재 1004곳의 군 교회에 260여명의 군종목사와 군선교사로 불리는 600여명의 민간인 목사가 사역을 펼치고 있다.
한 통의 카투사 편지… 군종제도의 탄생
해방 후 미 군정 하에서 15개 병과로 구성된 조선경비대가 창설됐지만 군종병과는 없었다. 당시 개신교의 한경직 류형기 목사, 천주교의 캐롤 안 주교가 주축이 돼 이 대통령에게 군종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카투사 사병의 진정서를 계기로 이 대통령은 1950년 12월 21일 ‘종군목사가 각 군대에 들어가서 일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듬해 2월 7일 육군 군종제도가 정식 창설돼 군종 1기 39명(목사 28명, 신부 11명)이 각 부대에 배치됐다.
초기에는 무보수 촉탁으로 군종목사들이 사역을 시작했다. 군종목사들의 활동비는 각 교단이 지원했다. 군종목사는 52년 6월 유급문관으로 격상됐고 54년 12월에는 현역장교로 다시 격상되면서 오늘날 군종제도가 자리 잡는다. 개신교와 천주교로 시작한 군종병과는 68년 불교, 2006년 원불교까지 확대됐다.
사실 비공식적인 군선교는 해군에서 먼저 시작됐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손원일 제독의 영향 때문이다.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자 초대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손 제독은 1948년 이화여고 교목이던 정달빈 목사를 초빙해 정훈장교로 입대시켜 군목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 정 목사는 1949년 2월 5일 용산 국방부 관사 33호에서 최초로 군인교회도 창설했다.
의무적으로 신앙생활 하라… 군선교의 비약적 성장
1969년 1군 사령관이 된 한신 장군은 군전력 강화를 위해 군종참모 한준섭 목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병사들이 기독교, 천주교, 불교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1970년 전군 신자화 운동이 시작된 이후 보호사병과 각종 사고가 감소하는 성과를 보였다. 1970년 11만명이던 신자 수가 1973년 27만9102명으로 증가한 것과 반대로, 군 사고자 수는 1만9248명에서 9041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전군 신자화 운동 기간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 신자는 괄목할 성장을 이룬다. 1970년 7만8176명이었던 육군 기독장병은 3년 뒤 19만 9623명으로 증가했다.
전군 신자화 운동과 함께 진중세례운동도 점화됐다. 1971년 최전방 육군대대에서 154명의 병사와 지휘관이 첫 합동세례를 받았다. 2012년 5월 19일에는 진중세례 40주년을 기념해 논산훈련소에서 9519명이 세례를 받았다. 최대 세례 인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5일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가 공개한 군 세례현황에 따르면 1992년 8만5000명이던 세례인원은 1999년 21만6080명으로 수직상승한다. 하지만 이를 정점으로 등락을 거듭하며 감소추세로 돌아서 2019년 12만2625명으로 줄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에는 2만9545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초코파이 선교는 옛말… 변화하는 군선교 지형
최근 들어 군선교 지형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우선 군복무 기간 단축 및 인구 감소 등으로 군인 수가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일부 군 교회가 체육관 시설이나 장병 쉼터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군 생활 환경도 상전벽해다.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교회에 간다는 말은 그야말로 ‘고전’이 됐다. 요즘 갓 입대한 이병도 월급이 40만원이 넘는다. 큰 부대 영내에 피자나 치킨 가게도 들어가 있다. 군내 인권문제가 대두되면서 간부들이나 선임병들이 예배 참석을 권유하지 못하는 분위기인 데다 장병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휴식시간에는 생활관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
경기도 한 대대에서 군선교사로 사역 중인 예용범 목사는 “과거 주일 예배에 40~50명이 참석했는데 요즘은 20명도 모이기 힘들다”고 전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황은 더 악화했다. 예 목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 민간인 목사들이 군에 들어갈 수 없어 계속 비대면예배를 진행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잠깐 대면예배를 진행한 뒤 오미크론 확산에 따라 다시 비대면예배로 전환됐다”면서 “과거 대대 예하 4개 중대에 예배 위원이 10명 넘게 있었는데 후임자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전역하면서 예배의 정상적인 진행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환경은 새로운 군선교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군선교연합회 이정우 사무총장은 “예전 훈련소 신병들은 주일이면 거의 모두가 종교활동을 했지만 현재는 생활관에 60% 정도가 남고 나머지 40% 정도만이 종교활동을 한다”면서 “훈련소에서 인터뷰를 해보니 종교 자체에 대한 비호감도가 60%가 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앞으로 선교적 관심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물이 아닌 낚싯대로… 비전2030
그동안 군선교는 군선교연합회의 역할이 컸다. ‘민족복음화의 지름길은 군 복음화’라고 외친 한경직 목사가 중심이 돼 군선교연합회의 전신인 전군신자화후원회가 1972년 조직된 이후 곽선희 목사를 거쳐 현재 김삼환 목사가 군선교연합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교회는 1996년 비전선포식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비전2020실천운동을 진행했다. 군선교연합회가 주도하고 군목들이 협력하는 형식이었다. 매년 15만~20만명의 청년군인들이 세례를 받는 등 큰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숫자에 치중하면서 분명한 한계는 있었다. 각 종교는 신자확보를 위해 과열 경쟁에 나서면서 종교가 희화화되기도 했다. 일부 종교에서는 훈련소에서 신병을 끌어모으기 위해 종교행사에서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주거나 아이돌 그룹의 선정적인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은 “예전에는 초코파이만 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햄버거를 줘도 안되는 시대”라면서 “그물이 아니라 낚싯대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비전2030실천운동이 시작돼 10년간 진행된다. 슬로건은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백만 장병을 한국교회로’이다. 매년 육·해·공군·해병대 신규 세례자 6만명과 기존 세례자 4만명 등 10만명을 1004개 군교회에서 양육·관리하고 한국교회로 파송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양육·관리와 거점교회. 과거 군교회에서 세례받은 장병의 명단을 정리해 군선교연합회에 보내주면, 군선교연합회가 한국교회에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세례는 원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고, 제대할 때까지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했다.
앞으로는 세례받은 장병을 군교회에서 직접 양육한 뒤 거점교회에 연결해 준다. 세례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한 장병에게만 이뤄진다. 제대할 때는 기존 출석교회가 있는 장병들은 출석교회로 재파송하고, 출석교회가 없을 때는 지역별 거점교회로 파송하게 된다. 거점교회는 비전2030을 함께 추진하는 핵심 주체로서 기본적으로 청년 공동체가 있고,청년 전담사역사가 있는 교회로 선정될 예정이다. 군선교연합회는 대학교로 복귀하는 장병들을 위해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등 청년선교단체들과도 연결해 청년들을 관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