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군 투입을 지시하면서 전운이 최고조에 달했다. 서방은 러시아를 맹비난하며 즉시 제재에 착수했지만 군사충돌은 여전히 꺼리는 모습이다. 8년 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러시아가 해당 지역을 무혈 접수할 공산이 커졌다.
푸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지역 2곳에 군 투입을 명령하고 더욱 광범위한 군사작전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세운 나라”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TV는 푸틴 대통령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법령에 서명하는 모습을 중계했다. 법령에는 러시아 국방부가 ‘평화 유지 기능’을 명분으로 해당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DPR과 LPR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스스로 선언한 ‘자칭 국가’다.
러시아는 특히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정부군 통제 지역도 친러 반군 영토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 가능성이 커지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 우려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과 DPR·LPR 지도자와 맺은 ‘우호·협력·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러시아가 이 공화국들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양측 중 한 국가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공동 방어와 평화유지를 위해 즉각 협의하며, 그러한 위협과 공격 행위에 대응하는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진다는 조항도 들어있다.
돈바스 지역 전개 상황은 크림반도 병합 때와 흡사하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주민투표 결과를 명분으로 삼은 분리주의자들의 ‘간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합병 절차에 돌입했다. 크림공화국 독립국 지위 승인부터 합병조약 서명, 러시아 의회 비준, 푸틴 대통령의 최종서명까지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DPR·LPR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 및 무역, 금융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독일은 서방의 대 러시아 핵심 제재로 꼽히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사업 중단 결정을 내렸다.
영국은 러시아 은행 5곳과 개인 3명을 대상으로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의 제재를 부과키로 했다. 독일과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요청할 경우 추가 파병도 검토키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이날 외무장관 회의서 대러 제재를 결정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22일 기준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 수는 선교사 14명, 유학생 4명, 자영업자·영주권자 45명 등 63명이다. 공관원과 크림지역 교민 10여명은 제외한 인원이다. 63명 중 국제결혼 등으로 생활 기반이 현지에 있는 30여명이 잔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강창욱 정우진 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kcw@kmib.co.kr